22일 충남 당진군의 한 중개업소.하도 답답해 서울에서 찾아왔다는 부재지주 송 모씨는 중개업자 박성환씨(47)에게 자신의 딱한 사정을 털어놨다. 송씨는 지난해 5월 "사두기만 하면 1년 안에 두 배는 뛸 것"이라는 기획부동산의 얘기만 듣고 인근 농지를 평당 20만원에 샀는데 두 달 후 주변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는 바람에 낭패를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박씨가 "현재 비슷한 곳의 논이 7만원 정도에 매물로 나와 있다"고 전하자 송씨는 긴 한숨을 쉬었다. 박씨는 "토지거래허가제가 실시된 이후에는 현지 주민만 땅 매매가 가능해 찾아오는 외지인은 거의 없다"며 혀를 찼다. 행정복합도시 건설 등 잇단 개발 호재로 지난해부터 땅값이 크게 오른 충남 주요 지역들은 요즘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활개를 치던 기획부동산들이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이후 일제히 철수하면서 남긴 상흔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송씨처럼 '상투'를 잡은 외부 투자자가 상당수에 이르며 중개업소들도 거래가 거의 끊기는 바람에 썰렁한 분위기다. 부여의 경우 중개업소가 토지거래허가제 이전에는 한때 120개 가까이 됐으나 지금은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기획부동산들이 '작업'을 하고 떠난 자리에 한숨만 남아 있는 꼴이다. 실제 행정도시 배후지역인 당진군,금산군,부여군 등의 중개업소에는 땅을 사겠다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이전 높은 가격으로 땅을 샀던 외부 땅주인들의 문의만 늘어나는 추세다. 금산군 금화공인 관계자는 "평당 2만∼3만원 하던 농지가 20만원까지 급등했지만 사정을 뻔히 아는 현지 주민들이 그만한 돈을 내고 땅을 살 턱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그런데도 대부분 외지인인 땅주인들은 가격을 내리려 하지 않아 파리만 날리고 있다"며 "기획부동산이 입주했다가 빠져 나간 가건물을 볼 때마다 울화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당진군의 영빈공인 관계자는 "요즘 사무실에 있으면 평당 6만원 정도가 적정 시세인 땅을 기획부동산의 농간으로 25만원에 매입한 부재지주들이 가격이 올랐는지를 묻거나,뒤늦게 주변 시세가 얼마나 되는지를 문의하는 전화만 온다"며 "그러나 기대를 갖고 전화했다가 '상투'를 잡은 사실을 알고 실망하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제대로 말해주기 미안할 정도"라고 전했다. 기획부동산의 '작업' 솜씨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부여에서는 수십년간 거래가 되지 않았던 천수답이 이들의 손을 거쳐 4∼5배 오른 가격으로 팔려나갔다. 이 땅은 위치가 나쁜 데다 경사도 심해 집을 짓기조차 힘들었지만 지적도상에는 관리지역으로 분류돼 있던 점을 이용,한 기획부동산이 평당 2만~3만원에 사들인 후 지분을 분할해 평당 10만원씩에 외지인 등에게 팔아넘겼다. 부여의 은혜공인 관계자는 "외부 투자자들이 현장을 한 번이라도 방문했거나 중개업소에 물어만 봤어도 피해를 보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