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화이트 칼라' 범죄에 대해 처벌 강도를 높일 전망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화이트 칼라 범죄에 대해 엄정하게 판결해야 한다"고 밝히자마자 17일 법원이 분식회계를 근거로 대출받은 혐의로 불구속재판을 받던 대기업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앞으로 기업인에 대한 양형이 높을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재계가 향후 기업인 관련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법원·검찰 한 목소리


이 대법원장은 지난 9일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한 법관과 법원행정처 간부들을 초청한 만찬에서 "단순 절도범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200억~300억원의 횡령에 대해선 집행유예 판결을 하면 국민이 어떻게 수긍하겠느냐"고 말했다.


이 대법원장은 두산 사건 판결을 두고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8일 286억원을 횡령하고 수백억원대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박용오 박용성 두산그룹 전 두 회장 등 11명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전원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데 대해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그 여파가 17일 열린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의 재판에 바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이날 분식회계를 통해 4056억원을 사기대출받고 8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다만 법원이 피고인의 충분한 방어권 행사를 보장해준다는 차원에서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지만 불구속재판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례적이다.


하지만 법조계 일부에선 이 대법원장의 판사 '군기잡기'가 지나치다는 지적을 제기하고 있다.


사법부의 수장이 구체적인 사건의 재판 결과를 언급한 것은 재판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 앞으로 대법원장의 코드에 맞추는 판결이 쏟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발언 의도와 상관없이 이번 언급은 적절치 못했다는 것이다.


한편 검찰은 대법원장의 말에 힘을 실어줬다.


천정배 법무장관은 "화이트 칼라형 범죄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볍다는 인식이 있다"며 "자유시장 경제의 근간을 흔들고 교란하는 사범은 좀더 분명하게 단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장과 법무부 장관이 거의 동시에 같은 목소리를 낸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화이트 칼라의 수사와 재판에 있어 큰 변화가 예고된다는 것이다.


◆해당 기업들 전전긍긍 속 촉각


재계는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특히 두산의 경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면서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극도로 말을 아꼈다.


검찰이 1심 판결에 대해 양형이 적다는 이유로 이미 항소해 놓은 상태여서 이 대법원장의 유감 표명이 향후 항소심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삼성 역시 "우리와 무슨 상관 있느냐"면서도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 저가 발행과 관련한 2심 재판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에버랜드의 전·현직 경영진은 지난해 11월 1심에서 배임죄가 인정됐다.


경제단체들은 공식 논평을 내기가 껄끄럽다는 입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다만 "대법원장이 기업 관련 범죄를 꼭 집어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법과 법관의 양심에 따라야 할 판결에 여론 운운한 것도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도 "사법부가 내린 판단은 그 나름대로 내부적인 검토를 거쳐 내린 결정인데 대법원장이 사후에 언급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김홍열·유승호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