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경 < 시인 > 옛날에 앞다리 짧은 이리와 뒷다리 짧은 이리가 살고 있었다. 앞다리 짧은 이리나 뒷다리 짧은 이리나 모두 불구여서 이동이 용이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둘은 마음을 합쳐 앞다리 짧은 이리는 뒤가 되고 뒷다리 짧은 이리는 앞이 되어 서로 어깨를 걸고 이동했다. 이 둘은 둘이면서 하나였고,하나이면서 둘이었다. 그러다 장애물을 만나 서로 어깨를 건 다리가 풀려 나누어지게 되면 둘 다 불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것이 '낭패(狼狽)'다. 낭패는 바로 이 두 마리의 이리가 합체되지 못한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오래 전부터 이런 낭패의 길을 걸어왔다. 앞다리 짧은 이리와 뒷다리 짧은 이리가 편을 나누어 이쪽은 저쪽을 욕하고 저쪽은 이쪽을 욕하며 살아온 지가 이미 반세기를 넘었다. 그런데도 아직 불구의 이리떼들은 서로 합체하지 못하고 도리어 앞뒤에다 더하여 이젠 좌우로도 나뉘어 조각그림이 되었다. 조각그림이 아니라 아주 모자이크가 되었다. 낭패다. 개성(個性)도 중요하고 남다른 생각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바로 지금 더 중요한 것은 통합의 논리(論理),통합의 이념이 아니겠는가? 내가 얼마나 남과 다른가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같은가를 생각할 때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마주 오는 기차처럼 서로 역방향에서 달려와 부딪히기만 한다. 여당과 야당이 그러하고,노사가 그러하고,남녀노소,우수마발이 다 그러하다.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의 상극(相剋)시대가 되어서인지는 몰라도 그 열매가 그 나무를 부정하고,그 가지가 그 뿌리를 부정하면서 우리 사회는 이미 모래알이 되어버렸다. 서로 잘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다르게 보이기 위해서 찢어지고 갈라진 생각과 행동의 파편이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문화라고 일컫는 공동체의 모습을 모래밭으로 만들고 있다. 이 모래들을 이어붙이고 함께 뭉쳐 단단한 벽돌로 만드는 것은 위정자에서부터 학자에 이르기까지 이 시대의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사회 지도자들은 입으로는 통합을 이야기하면서 오히려 더 극심한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더 나은 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념에 충실하기 위해서,더 선명해지고 달라지기 위해서 분열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우리가 얼마나 같은가,우리는 너와 내가 얼마나 많은 교집합을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할 때다. 이것이 통합의 논리,통합의 이념이며 상생(相生)의 이념이다. 나와는 다르기 때문에 너이지만,서로 같기 때문에 우리이지 않은가. 우리는 나와 너 둘이지만 하나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생각의 한 발만 자신의 틀에서 나와서 보면 보일 일이다. 저 앞다리 짧은 이리와 뒷다리 짧은 이리가 어떻게 우리를 이루며 살아가는지를 우리는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영원히 너는 너일 뿐이고 나는 나일 뿐 이라면 우리는 정말 낭패다. 생각을 한번 바꾸어보자. 그러면 영원히 평행선으로 달릴 것 같은 경도선(經度線)도 남극(南極)과 북극(北極)에서 만나지 않는가. 생각을 바꾸면 영원히 나누어진 것 같은 안과 밖도 만날 수 있지 않은가. 저 뫼비우스의 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