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관청가 가스미가세키에 있는 다케나카 헤이조 총무상의 집무실을 찾은 것은 9일 오후 3시30분. 2006년 예산을 다루는 국회 회기 중이어서 그런지 대기실에는 국회의원들과 고위 관료들이 내각 선임인 총무상을 만나기 위해 서성대고 있었다. 인터뷰는 50분가량 진행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개혁 브레인으로 막강한 총무상을 맡고 있는 실세 장관이지만 학자 출신 답게 집무실은 검소했다. "많이 기다리게 해 미안합니다. 한국의 대표 신문인 한국경제신문 기자를 만나 일본의 구조 개혁 얘기를 나누게 돼 기쁩니다." 국회 회기 중 바쁜 시간을 내 인터뷰에 응해줘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자 다케나카 총무상은 오히려 영광이라며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일본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들어갔습니다. 공공부문 개혁이 경제 회복을 이끌었다는 평가가 많은데요. "경제가 성장하려면 민간부문이 강해져야 합니다. 정부는 그들이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사회적 틀(룰)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고이즈미 내각 출범 직후엔 금융권의 불량 채권 처리를 최우선적인 정책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런 목표들이 달성돼 경제가 정상 궤도에 접어들었습니다. 공공부문 개혁은 가속돼야 합니다. 재정적자 해결을 위해서도 절대적입니다." -공공부문 개혁은 노련한 관료의 반발에 부딪쳐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습니다. 일본은 어떻게 공무원들의 반발을 누르고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습니까. "지금도 공공부문 개혁에 반발하는 세력이 많습니다. 그러나 목표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고이즈미 총리의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식으로 기득권층의 반발을 눌렀습니다. 효율을 높이기 위한 '작은 정부'가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냈죠. 구조 개혁이 중도에 좌절되지 않으려면 9월 선출되는 차기 총리도 개혁적인 인물이 돼야 합니다." -지금까지 실행한 구조 개혁 중 경제 부활에 결정적인 정책은 무엇입니까. "우정 민영화 입니다. 우정사업 개혁은 1996년부터 추진됐지만 기득권층의 반발에 밀려 진전이 없었습니다. 급기야 총리가 국회를 해산하고 국민들에게 직접 의사를 묻는 방식으로 작년 10월에야 법안 처리에 성공했죠. 우편저금과 우편보험 형태로 갇혀 있는 335조엔 규모의 자금이 민간 금융회사로 흘러가 금융산업 발전은 물론 산업 자금으로 유용하게 쓰일 것입니다. 그러고 나니 국내외에서 정부의 개혁 의지를 평가해주더군요. 일본 경제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져 주가도 올랐습니다. 개혁 비전도 분명해졌고요." -공무원 수를 앞으로 5년간 5% 줄이는 작업을 추진 중입니다. 인원 감축 대상은 어떤 부처입니까. "부처별로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만들고 있습니다. 1.5%는 총무성이 인력 관리를 통해 줄일 예정입니다. 나머지 3.5%도 대상 직종을 정한 상태입니다. 통계 관련 부서,중앙부처의 지방 파견 조직,홋카이도 개발 부서,사회보험청 등의 조직이 대폭 정비됩니다. 장기적으로는 국민총생산(GDP) 대비 공무원의 인건비 비율을 10년 후 절반 수준으로 낮출 계획입니다. 다만 극단적인 강제 퇴직을 고려하지는 않고 정년 퇴직 등 자연 감소분을 충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인력을 줄여갈 방침입니다." -고이즈미 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빈부 격차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면 힘 있는 '큰 정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동의할 수 없습니다. '작은 정부'로 인해 빈부격차가 생긴다는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유럽의 국가를 보더라도 큰 정부가 빈부격차에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으며,일본 역사를 되돌아봐도 정부 규모와 빈부격차는 상관 관계가 없었습니다. 일본의 경우 1980~90년대에 정부가 커졌지만 실제로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졌습니다.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소득 재분배는 정부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선택과 인력 활용의 문제입니다. 작은 정부를 만들어 민간에 대한 개입을 줄이고 규제를 완화해 '기회의 평등'을 만들어 경제를 활성화시키면 격차가 해소될 수 있습니다. 규제가 적어지면 민간부문이 활력을 찾게 되며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고이즈미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작은 정부를 지향해왔습니다. 금융부문에 대한 정부 간섭을 줄여 규제를 완화한 결과 금융산업의 국제 경쟁력이 크게 높아진 게 이를 입증합니다. 구조 개혁 가속화로 모든 사람에게 '기회의 평등'을 주는 일이야 말로 진정한 빈부격차 해소 방안입니다." -일본의 빈부격차는 얼마나 심각합니까. "일부에서 지적하는 것 처럼 빈부격차가 실제 크지 않습니다. 통계적으로 확인 가능한 지니계수를 봐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일부 매스컴에서 빈부격차를 부각시키는 것은 개혁에 반대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 개혁을 할수록 빈부격차가 커진다는 주장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구조 개혁을 통한 기회의 균등이야 말로 소득 격차를 줄이는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물론 약자 보호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도 동시에 추진돼야 하겠지요." -재정 건전화에 필요한 세수 확대를 위해 5%인 소비세율(부가가치세율)을 인상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비세율을 올리되 가능한 한 폭은 적게 한다는 게 정부의 기본 방침입니다. 구체적인 재정 건전화 방안에 따라 인상 시기와 폭이 결정될 것입니다. 재정 상태가 나쁘기 때문에 증세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입니다. 경제 활성화가 우선입니다. 경제를 성장시켜 세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한국 경제도 회복세가 빨라지고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국은 여러면에서 장점이 많고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과 비슷한 약점도 있습니다. 바로 경제의 '이중구조(dual economy)' 문제입니다. 한국도 일본 처럼 자원의 집중을 통해 대기업 부문이 강해졌지만 상대적으로 약한 부문은 보호를 통해 지탱하고 있는 상태라고 알고 있습니다. 경제의 이중구조는 결국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미래 경제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한국 정부가 특정 산업을 보호하려고 해도 중국 베트남 등 경쟁력을 가진 국가들이 속속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하루 빨리 이중구조를 개선해야 합니다." -한·일 양국 간에 추진돼온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향후 전망은 어떤가요. "양국 모두 경제의 이중구조를 갖고 있어 국내 산업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협상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양국 간 협상은 협상대로 하면서 자국 내 이중구조를 고쳐나가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됩니다. 양국 간 FTA 체결은 상호 경제 발전에 반드시 필요하며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