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3대 여권운동가로는 벨라 앱저그,베티 프리단,글로리아 스타이넘이 꼽힌다. 앱저그는 노동법률전문가로 활동하면서 하원의원을 지냈고 반전운동과 함께 전국여성정치회의를 창설하기도 했다. 고인이 된 그녀가 여권신장의 선구자라면 프리단과 스타이넘은 여성해방운동의 기수로 불린다. 스타이넘은 인종과 계층을 넘어선 여성연대운동을 펼치는가 하면 1972년에는 진보적 여성잡지 '미즈'를 창간하면서 일약 유명세를 탔다. 현재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미즈(Ms.)'란 용어는 미스(Miss)와 미세스(Mrs.)로 구분된 여성호칭을 하나로 통일시킨 신조어였다. 10여년 전부터는 "우리들의 딸을 직장으로 데려가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주말 85세를 일기로 타계한 프리단은 '여성의 신비(The Feminine Mistique)'라는 책을 써서 현대 여성운동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여성이다. 그녀는 명문 스미스대학을 졸업하고 버클리대학에서는 심리학을 공부했다. 한동안 기자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결혼을 하고서는 가정으로 돌아갔다. 광고회사 중견간부인 남편과 세 아이를 둔 프리단은 당시 전업주부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살을 하는 사례가 빈번하자,우선 동창들을 인터뷰하면서 문제점을 밝혀냈다. 이를 '이름없는 병'이라 명명했는데,'여성의 신비'는 곧 탐사보도인 셈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쓴 '제2의 성'도 그녀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고 한다. 프리단은 어머니 또는 아내 노릇에 중독되어 있는 주부들을 흔들어 깨운다. 여성들을 신비화하는 기존관념을 타파하고 자신들의 주체성을 찾을 것을 강력히 권한다. 그녀는 "전통적인 여성의 모습대로 살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이 여자임을 즐겁게 생각할 수 있다"며 힘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프리단이 '행복한 포로수용소'라 비판했던 가정에는 아직도 수많은 여성들이 갇혀 정체성의 고민을 하고 있다. 여권운동이 지속되는 한 프리단의 이름도 계속 기억될 것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