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공부 각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클린턴 정부 재무장관이던 로버트 루빈은 자서전(글로벌 경제의 위기와 미국)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하버드대 입학 초 나는 탈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다들 내로라하는 학교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1년 뒤 그런 걱정은 덜었지만 3,4학년 내내 기숙사의 침대 겸용 소파에서 자면서 논문을 썼다."
그는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연구하고 논문을 쓰는 일 자체를 즐겼다고 털어놨다.
루빈의 말이 아니더라도 하버드대에 다녀온 사람들의 얘기는 한결같다.
"거기선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 하버드뿐이랴.미국에 살아본 이들은 대학 도서관에 가보면 미국의 경쟁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알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는? 1970년대 전반과 80년대 초 대학을 다닌 사람 상당수는 대학에서 뭘 배웠는지 잘 모른다.
유신 및 군부 독재에 항거하는 시위로 툭하면 휴교 상태가 되거나 휴강 공고가 붙었으니까.
개강 뒤 두어 차례 수업을 받곤 리포트를 내는 것으로 학기가 끝난 경우도 있었다.
잦은 시위만 공부를 방해한 건 아니었다.
예외가 있었지만 많은 대학생들이 입시지옥에서 놓여난 해방감을 만끽하느라 공부는 뒷전으로 밀어놓기 일쑤였다.
그래도 졸업하는데 별 지장 없고.오죽하면 서울대 상대와 경영대생 사이에 널리 불린 노래 구절에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라는 게 있을까.
취업전쟁이 심화되면서 예전 같진 않다지만 그래도 우리의 대학은 헐렁해 보인다.
대학을 자유의 광장으로 여기는 건 비슷한지 영국 옥스퍼드대학이 신입생들에게 '공부 각서'를 받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수업을 빼먹지 말고,과제를 잘 내고' 등의 면학계약서에 서명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흔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한다.
학력과 학벌 모두 한끗 차이에 불과한 것도 물론이다.
그러나 살아본 사람은 안다.
해야 할 일을 제때 제대로 하지 않은 데서 비롯되는 한 끗 차이가 때로 얼마나 많은 걸 갈라놓는지.어느 대학에 들어갔느냐 보다 중요한 건 대학에서 자신을 얼마나 갈고 닦느냐이다.
성공은 일상의 노력에 달렸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