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그린스펀의 '직접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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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금리인상을 결정한 지난 31일(현지시간). 뉴욕증시는 하루종일 출렁거렸다. 오전 내내 하락세에 머물던 주가는 FOMC 발표 직전 상승세로 반전됐다. 금리인상 중단에 대한 기대감에서였다.
그러나 웬걸. 금리인상 중단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 없자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잠시후 금리인상과 동의어로 인식되던 '신중한(measured)'이란 문구가 삭제된 걸로 나타나면서 재차 상승에 성공했지만,'추가 조치(금리인상)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표현이 부담이 돼 결국 하락세로 끝나고 말았다.
이를 두고 어느 외신은 '앨런 그린스펀의 마지막 허세(Alan's last hurrah)'라고 표현했다.
'세계의 경제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날까지 특유의 애매모호한 표현을 사용,그린스펀다움을 과시했다는 의미에서다.
과연 그랬다. 그는 18년6개월동안 FRB 의장으로 재임하면서 특유의 두루뭉술한 어법으로 시장을 휘어잡았다.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전염성 탐욕(infectious greed)''소프트 패치(soft patch)'같은 명언을 남기면서 '그린스펀 효과'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창조적 유연성(flexibility) 및 실용주의(pragmatism)와 함께 그린스펀식 화법(rhetoric)이 그의 성공비결"(앨런 블라인더 스탠퍼드대 교수)로 꼽힐 정도로 그의 간접화법은 탄복을 자아냈다.
이런 그린스펀도 마지막 자리에서만은 직접화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던 모양이다. FOMC 직후 열린 퇴임 리셉션에서 그는 "FRB 의장직은 아주 특별한 임무였다"고 회고했다. 이어 "우리는 국가의 통화와 중앙은행을 책임지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국민의 일상에 참여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FRB가 또 다른 특별한 업무를 이어갈 것을 확신하며 곁에서 지켜보고 응원하겠다"는 말도 했다.
세계 경제대통령의 퇴임을 지켜보면서 우리도 저런 중앙은행 총재를 가져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를 쥐락펴락하지는 않더라도,'국민의 일상에 참여하고 있는 중앙은행의 중요성'을 체득하고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