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포럼] 월급쟁이를 또 쥐어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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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코 앞이다. 이맘 때만 되면 서민들의 마음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멀리 떨어져 지내던 가족 친지를 만나는 즐거움도 있지만 고향을 다녀오랴,음식과 선물을 장만하랴, 세뱃돈을 준비하랴 이래저래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는 까닭이다.
쥐꼬리만한 월급 받아서 생활비 대고,자식들 교육시키고,은행 융자금 갚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고 보면 명절 한번 지내는 것도 그리 만만할 리가 없다.
그런데 어이하나. 자칫하면 얄팍한 월급봉투마저 더 쪼그라들 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자 이쪽저쪽에서 앞다퉈 증세(增稅)의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굳이 살펴보지 않더라도 세금을 더 거둘 수 있는 방안이라면 사실 뻔할 뻔자다.
월급쟁이와 기업을 더욱 쥐어짜는 것 외에 달리 무슨 큰 방법이 있겠는가.
다행히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당장 세금을 올리겠다는 뜻은 아니라며 한발 물러서긴 했지만 증세에 대한 걱정은 가시지 않는다.
정부가 추진 중이라는 비과세 및 조세 감면 축소 방침만 해도 따지고 보면 증세와 다를 게 없다.
조세 혜택을 줄이겠다는 것은 세금을 그만큼 더 걷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뜻이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비과세 및 조세 감면액 19조9878억원 가운데 12조3122억원(61.6%)이 봉급생활자 농어민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었고 봉급생활자만 따져도 7조7000억원(38.5%)에 달한다니 서민층에 미칠 영향이 결코 작지가 않다.
게다가 툭하면 소주세와 담뱃세 인상까지 들먹인다.
서민층을 돕기 위한 재원을 마련한다면서 서민층에 스트레스만 가하고 있는 형국이다.
월급쟁이 같은 서민들이 세금 인상을 감내할 만한 처지에 있는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통계청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중 전국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294만8700원으로 2.1% 늘었지만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소득은 오히려 0.2% 감소한 상황이다.
지출 측면을 봐도 소비지출보다는 세금 연금 같은 비소비지출의 증가속도가 훨씬 빠르다.
이런 처지에 세금을 더 낸다면 생활형편이 어떠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더구나 세금 인상이 나라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다.
실질소득의 감소는 소비 위축을 부르고 그리 되면 경기회복 속도도 더욱 더뎌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꼭 필요하다면 세금을 인상할 수도 있고 또 그리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은 세금이 공평하고도 합리적으로 거둬지고 있다는 전제가 충족돼야 설득력을 갖는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이 과연 그러한가.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절반가량은 연간소득을 면세점인 508만원 이하로 신고해 월평균 42만3000원에도 미치지 못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들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220만원을 넘는다.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지 땅에서 솟아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세수(稅收)에 구멍이 뚫려도 보통 큰 구멍이 뚫린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소득원이 100% 노출되는 월급쟁이들이 이들의 몫까지 대신 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상태에서는 세금을 인상해도 월급쟁이들만 또 희생양이 될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이치다.
세금 인상보다는 공평 과세를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 더욱 시급하다.
이봉구 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