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시장을 중심으로 한 투매현상이 극에 달하며 23일 한국 증시는 가히 `패닉'이라 할 만한 혼란상황에 빠져들었다. 이날 코스닥시장에서는 지난주 급락장세를 무색하게 할 정도의 투매현상이 빚어지면서 오후 들어 지수가 끝없이 추락하자 급기야 오후 2시19분께 최후의 버팀장치인 `서킷브레이커'(주식매매 일시정지제도)가 발동되기도 했다. ◆ 코스닥, 사상 첫 서킷 브레이커 발동 = 이날 폭락장의 주역은 코스닥시장. 코스닥지수는 전 주말 대비 무려 63.98포인트(9.62%) 폭락한 601.33에 마감, 가까스로 600선에 턱걸이했다. 하지만 이날 코스닥지수가 596선까지 추락, 한때 하락률이 10%를 넘어서며 증시 사상 최악의 폭락장이었던 '9.11테러' 다음날인 2001년 9월12일 이후 최악의 하락세가 연출되면서 코스닥시장 사상 초유의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기도 했다. 코스닥시장은 이날 하락종목이 895개, 이중 하한가 종목이 347개라는 비교대상을 찾기 힘든 참담한 성적표를 기록했고 상승종목은 단 32개로 하락종목의 20분의 1에도 못미쳤다. 유가증권시장도 2%가 넘는 급락장세(-2.06%)가 연출되며 지수 1,300선이 무너졌지만 코스닥에 비해서는 비교적 하락폭이 양호했다. 지수선물이 하락한 대신, 베이시스가 호전되며 6천440억원어치의 대규모 프로그램 매수우위가 형성돼 주가를 떠받친 탓이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이날 하락종목이 733개로, 상승종목(70개)을 10배 이상 압도했지만 삼성전자(-0.29%)가 소폭 하락에 그쳤고 한국전력(2.46%), 국민은행(1.06%) 등 대형주들은 프로그램 매수세 유입으로 양호한 움직임을 나타냈다. 한화증권 이영곤 애널리스트는 "코스닥은 유가증권시장의 프로그램 매매처럼 종목별로 받아줄 수 있는 수급도 없는 가운데 미수금 해소 매물을 비롯한 급매물이 출회되고 있다"며 "추가 하락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투자자들, 대책없어 발만 '동동' = 지난 주 3차례의 폭락장에 이어 미국 증시의 주말 급락장세까지 가세, 또 한 번의 '블랙데이'가 연출되자 탄탄한 수급에 기댄 기술적 반등을 기대하던 투자자들은 망연자실하며 적정 매도시점을 찾지 못해 발만 구르고 있는 형편이다. 대우증권 오찬욱 강서지점장은 "테마주 중심으로 움직이던 코스닥의 경우 매도하지 못했던 고객들이 40∼50%씩 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손실이 너무 커서 (손절매) 결정을 못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아울러 "그간 많이 오른 상황이어서 투자자들의 항의 등 특별히 소란한 상황은 없다"면서도 "지금 추세는 분명히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보유주식을) 절반 정도 매도할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고액 자산가들이 많은 강남권도 어려움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한화증권 이주현 대치지점장은 "사실 투자자들이 대처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떨어지고 있는데다 미수가 늘고 장이 돌아설 기미를 안보이니 매물이 매물을 부르는 상황"이라고 현장에서 느끼는 분위기를 전했다. 다만 아직까지 펀드의 환매는 본격화되고 있지 않지만 이제부터는 현금화를 생각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게 이 지점장의 분석이다. 동양종금증권 김형준 압구정지점 대리는 "코스닥 시장에서 어느 정도 하락세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투매로 이어지리라고는 예상 못했다"며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고객들이 극심한 항의 등이 쇄도하고 있지는 않으나 손해를 많이 본 고객들에게 반만 매도하고 상황을 보자고 설득하는데 다들 애를 먹고 있다"고 덧붙였다. ◆ "과잉 반응이 최대 금물" = 고객들의 자산을 맡아 운영하는 투신운용사 관계자들은 매물이 매물을 부르는 상황에서 분위기에 휩쓸린 환매를 가장 경계해야 할 요인으로 꼽고 있다. 아직까지는 펀드에서 본격적인 자금유출이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폭락장이 좀 더 이어진다면 최악의 상황을 유발할 수 있는 '펀드런'(무조건적 환매요구 쇄도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태광투신운용 장득수 상무는 현 상황을 "적립식 펀드 등으로 시장에 들어온 개인들이 계속해서 열심히 (자금을) 부을 수 있는가를 테스트하는 구간"이라고 진단하며 "투매에 동참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지적했다. 일부 배당주 펀드나 작년 코스닥 종목 편입으로 고수익을 낸 펀드들에서 환매가 나타나고 있으나 매물을 받아줄 곳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외국계 투신운용사의 한 펀드매니저도 "일부 펀드에서 환매가 시작된 것으로 보이나 철저한 종목분석 위주의 가치투자를 했던 펀드들은 현 급락장에서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펀드의 성격을 고려한 환매를 당부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수.김중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