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선 < 현대해상화재보험 사장·jason@hi.co.kr > 남극 빙하 위에 떼를 지어 서 있는 펭귄을 언뜻 보면 그냥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들 펭귄 무리는 그냥 무질서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무리 지어 있으면서도 일부는 바깥쪽에서 보초를 서고 다른 일부는 교대로 안쪽에서 피곤함을 달래거나 잠을 청한다.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여 냉혹한 추위를 견디고 각자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면서,알과 새끼를 노리는 남극의 포식자들로부터 종족을 지켜 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펭귄은 천지가 빙하인 바닥에 그냥 알을 낳을 수 없어 수컷의 발 위에다 알을 낳는다고 한다. 수컷은 영하 40도 이하로 내려가는 추위 속에서 계속해서 알을 품고 있고 암컷은 먹이를 구하러 바다로 떠난다. 이후 알이 부화할 때쯤에는 수컷이 먹이를 구해와 어린 펭귄과 암컷에게 공급한다. 언뜻 보기에 그저 추위 속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것 같은 펭귄도 알고 보면 각자에게 저마다 적합한 역할이 부여되며,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일정 정도 고통을 감수해 나가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상이 복잡다단해지면서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맡은 바 역할을 수행하기보다는 일단 먼저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행동을 보인다. 또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논쟁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역할 수행보다는 자신에게 돌아올 파이를 크게 할 수 있느냐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은 남극의 펭귄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주어진 역할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초심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회생활 안에서 개인에게는 많은 역할이 부여되며 개개인이 이러한 역할에 대해 성실한 자세로 임할 때 사회적 자정작용과 검증을 거쳐 공동의 가치와 궁극의 목표를 달성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중 하나의 역할에 이상이 생긴다면 그 파급효과는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사람의 역할은 펭귄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펭귄의 역할이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사람은 나와 내 가족만 잘 살겠다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자기보다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는 역할로 승화돼야 한다. 러시아의 작가 투르게네프가 공원에서 만난 거지에게 "줄 게 없어서 미안합니다"라고 하자 거지가 눈물을 글썽이며 "아닙니다. 내 생애에 이렇게 큰 걸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했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아무리 사소한 행동일지라도 우리가 의도적으로 봉사하는 습관을 들이면,봉사 욕구는 점차 강해져 자신은 물론 세상 전체가 행복하게 될 것이다. 애인의 이름으로 기부한 뒤 기부확인서를 깜짝 선물했다는 어느 직장인의 소식이 자주 들리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