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란 < 가람감정평가법인 이사 srcha@cvnet.co.kr > 며칠 전 시내 유명호텔 커피숍에서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의 일이다. 옆 테이블에서 4명의 기업인이 업무를 논의하면서 협약서 작성을 하고 있었다. 테이블 간 거리가 멀지 않아 소리가 아주 잘 들렸다. 처음에는 각자의 업무 역할 등을 거론하면서 원만히 진행되어 가는 것 같았는데,갑자기 소리가 높아져서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내용인즉 손해배상책임 조항에 어느 일방의 업무 불이행 또는 이행 지체의 경우 그로 인한 상대방 손해발생액의 5배에 해당하는 손해배상금을 주장하는 소리였다. 한참동안 얘기가 이어졌는데 협약이 체결된 것 같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들이 얼마나 많은 '계약 체결'의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지 생각해 보았다. 단순한 아파트 매매계약서에서부터 고용계약서,물품구입계약서,용역계약서 등 계약서라는 이름과 공동업무협약서,업무 기본합의서,동의서 등 상호 협조하며 공동 목표를 수행해야 하는 협약서까지 그 종류를 헤아리기 어렵다. 나는 법학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일반 상식 수준에서 말한다면,민법상 '계약'이란 기본 전제는 있지만 언제 어디서든 누구하고나 자유의사에 의해 청약과 승낙의 절차를 거쳐 맺어지는 법률행위를 말한다. 이는 그 법률효과에 대해 계약 당사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의거해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야 한다는 것을 기본 개념으로 한다. 물론 점점 복잡해지는 사회 현상 속에서 좀 더 명확히 권리와 의무를 명시하고 미래의 발생 가능성까지 예측하여 상대방의 계약 불이행,이행 지체 등을 이유로 손해배상의 기준을 놓고 다투면서 계약서의 내용을 복잡하게 만들어야 하는 게 현실이긴 하다. 그러나,그 업무를 수행하는 것도 사람이고 일이 안되었을 경우 수습하고 책임감 있게 움직여야 하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예측하여 계약서에 문구화하는 것만이 과연 최선의 방법인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왠지 상호 간에 신뢰가 결여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앞서 기업인들도 공동으로 업무를 추진할 파트너라면 손해배상책임 조항을 다툴 것이 아니라,과연 상대방과 그 업무 자체를 상호 신뢰하에 수행할 수 있는지,얼마나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검토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을지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