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봉 < 중앙대 교수·경제학 > 고속도로 주변에 '몰래 버린 쓰레기, 몰래 버린 양심'이란 입간판이 서있다. 몰래 버린 양심? 요새는 병역기피자,체제파괴자들이 앞다퉈 양심을 자처한다. 백주(白晝) 철면피 언행이 가득한 세상에서 몰래 버리는 양심 속엔 부끄러운 마음 한 조각이라도 숨어있는 것 아닌가. 북한에 돌려보내준 비전향 장기수들이 남한에서 감옥에 가두고 고통을 준 데 대해 10억달러 이상을 보상하라며 국가인권위원회와 과거사정리위원회 앞으로 고소장을 보내 왔다. 북한정권이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것은 우리가 다 안다. 그들은 인민을 가두고 굶기는 땅을 지상낙원이라 선전하고,국제사회에서는 달러위조 마약밀매 민간인납치를 조직적으로 자행한다고 의심받는 정권이다. 그들의 요구는 참으로 뻔뻔스러우나 창피를 모르는 부류들이 하는 짓이니 그저 그러려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정권을 두호하며 남한에서도 많이 닮아가는 모양이다. 홍콩에서 불법폭력시위를 해 재판중인 농민시위대는 그들의 변호사비,생활비,피복비,가족면회를 위한 여행경비까지 참여정부에 요청했다. 나라 밖까지 나가 무법 무체면의 민족성을 과시한 자들의 기막힌 요구나,이런 한국시위대를 무죄석방하지 않으면 1000여명의 석방촉구 시위대를 다시 파견하겠다고 홍콩재판소에 으름장을 놓는 민주노총이나 그 억지와 뻔뻔함은 반도 북쪽을 거의 뺨치는 수준이 됐다. "너나 잘하세요"의 이영애씨, 스크린쿼터 지키기의 안성기씨 등 이른바 한류스타들도 홍콩 원정시위대 석방운동에 나섰다.영화배우들은 오늘날 한국의 청년문화를 이끄는 대표집단이니 이들의 모범역할(role model)은 곧 우리청소년의 미래 얼굴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그들이 극력 사수하는 스크린쿼터는 선진국 어디에서도 실행되지 못하는 극단의 집단이기주의 반(反)시장 반개방제도다. 세계화시대의 풍요 덕분에 부와 영예를 누리는 이들이 '국가문화보호'라는 국수적 허울을 씌워 제도를 합리화하며,스스로는 창피한 줄도 모른다. 이런 영화인의 행태와 그들이 탄원하는 세계무역기구 반대시위자들의 의도가 일맥상통하는 것은 우연보다는 필연에 가깝다. 김대업의 양심선언이 정권탄생에 도움을 준 이래 우리는 치부(恥部)를 드러내고 마각(馬脚)을 노출함을 부끄럽지 않아 하는 사회가 돼가고 있다. 전교조의 교원평가반대,정권의 과거사법,언론편파와 신문관계법,사학법,수도분할과 공기업 이전,지난주 '종교사학은 빼고' 사학을 차별감사하겠다는 정부발표까지 어느 것 하나 노골적으로 저의(底意)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없다. 선거운동자,낙선자,코드인물 등 사(私)적 연고자에게 공(公)적 자리를 나눠주고,공공자원을 정권목적에 이용하는 일은 예전에는 국민의 이목 때문에 눈치를 보던 일이었다. 이것이 오늘날은 기탄없이 이루어짐은 물론,오히려 당위성까지 강조한다. 이런 사회는 진보세력의 의도와 통한다. 사회를 바꾸려는,그리고 그들의 세상을 유지하려는 목적이 지상(至上)의 신념이 되기 때문에 어떤 수치스러운 수단도 오히려 자랑스러운 전과(戰果)가 된다. 양심은 일단 버려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을 염치불감증에 면역시키고,오직 잇속만 아는 동물로 만든다. 오늘날 정권의 지지도는 하락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나날이 몰염치 이기주의 세상에 길들여지고 있다. 이런 세태가 진보정권의 10년 집권을 호언하는 근거가 되는지도 알 수 없다. 과거세대는 예의염치를 생활화하며 살아왔다. 지금은 지구 반대쪽 영국에서 오히려 신사 나라의 자존심을 되찾는다며 '사회적 존경 회복'운동을 시작하고 있다. 10년 후 우리는 남북 모두가 짐승처럼 권력 이익만 뺏자고 싸우는 사회,양심 있는 사람은 대낮에 등불을 들고 찾아다녀야 하는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