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개척주의와 규범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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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휘창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글로벌 스탠더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미국식의 개척주의(Frontierism)이고 또 하나는 일본식의 규범주의(Disciplinism)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도약을 위한 마지막 단계에서 이 두 가지 글로벌 스탠더드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이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회 각 분야에서 뛰어난 개척주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학기술이나 경영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대부분 미국에서 만들어졌고 이러한 성과에 대해 높은 보상을 주는 시스템이 잘 발달돼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일본은 획기적인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기존의 상황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시간이 걸리고 융통성이 떨어지더라도 기존의 규범을 철저히 지키면서 한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한번에 크게 도약할 수는 없어도 시간이 지나면 전반적으로 꽤 발전을 하게 된다.
미국은 토끼,일본은 거북이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 글로벌 스탠더드를 택해야 할 것인가. 황우석 교수 사태에 대한 국내외 언론들은 이 문제에 대해 갈팡질팡해 우리에게 올바른 교훈을 주지 못하고 있다.
첫째,대부분의 언론들은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는 좋은 문화이고 지난 수십년간 우리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이런 문화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상상을 해보라.우리 보고 '빨리빨리' 하지 말라는 것은 토끼 보고 빨리 뛰지 말라는 것과 같다.
둘째,'지나친 성과주의'를 또 다른 원인으로 꼽고 있다.
물론 어떤 단어 앞에 '지나친'이란 말을 붙이면 그 단어는 나쁜 의미가 되지만 '성과주의' 자체는 좋은 제도이고 선진 시스템의 핵심요소이다.
성과에 대한 보상이 미흡하면 사회 전체가 게을러지고 능력 있는 사람은 그 사회를 떠날 것이다.
셋째,무비판적인 영웅 만들기의 '시민의식'이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과학자들이 비판을 해야지 일반시민은 과학적 판단을 할 위치에 있지 않다. 또한 영웅을 인정해주는 시민의식은 좋은 것이다. 골프 월드컵축구 한국영화 등에서 우리가 영웅을 인정해주었기 때문에 이러한 산업이 크게 발전한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세 가지 문제점인 빨리빨리,성과주의,영웅 만들기는 사실 모두 좋은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을 못하게 한다면 마치 토끼 보고 빨리빨리 뛰지 말고,경기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 말 것이며,혹시 잘 뛰더라도 관중들 보고 박수치지 말라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토끼가 잘못된 게 아니라 정말로 훌륭한 토끼는 하나의 장점이 더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빠뜨린 것이다.
그것이 바로 또 하나의 글로벌 스탠더드인 규범주의이다.
따라서 토끼를 거북이로 바꾸려고 할 게 아니라 토끼에게 거북이의 장점을 배우게 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개척주의와 규범주의로 나눴지만 진정한 선진국은 이 두 가지를 다 갖춰야 한다.
순서가 중요한 데 규범주의를 상당 수준 먼저 확립하고 개척주의로 나가는 것이 대형사고를 줄일 수 있다.
우리는 이 순서를 거꾸로 해서 개척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했기 때문에 여기저기 불안요소가 많은 것이다.
어쨌든 순서는 바뀌었지만 개척주의를 뒤로 돌릴 수는 없고 다만 이에 걸맞게 규범주의를 구축해야 한다.
이번의 쓰라린 경험에서 올바른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잘못된 분석이 난무한다면 더 큰 낭패를 보게 된다.
새해의 재계 경영화두는 '도전과 혁신'이라고 한다.
또다시 개척주의만을 강조하는 느낌이 든다.
도전과 혁신을 하기 전에 기존의 상황을 철저히 살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cmoo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