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형편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힘 없고 경제능력이 없는 노부모님은 꼭 모셨으면 해요.


특히 엄동설한(嚴冬雪寒)에 냉방에서 하루종일 보내는 노인들을 보면 너무 안타까워요."


인천시 동구 송림2동 속칭 '수도국산 달동네'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고일상씨(51·송림2동 새마을협의회장)는 혼자 사는 노인과 소년소녀가장의 집을 수리해주는 게 제2의 직업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영하의 날씨에 얼어터진 낡은 수도꼭지를 교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고,힘이 없어 못조차 박을 기운이 없는 가난한 동네 노인들을 찾아다닌다.


고씨는 가난한 이웃의 새는 지붕을 수리해 주고 보일러를 고쳐주는가 하면 도배일도 도와준다.


작년에 가난한 80대 할머니가 집을 수리하던 도중 방바닥 장판 밑에서 수표와 현금 등 1002만원이 나와 횡재를 했던 일도 고씨의 '사랑의 집고치기' 덕분이었다.


고씨의 작은 이웃사랑에 공감한 기술자들이 몰려들어 어느 새 회원이 105명으로 불어났다.


용접공,도배공,미장이,보일러수리공,목공 등으로 회원들의 직업이 다양해지면서 집수리 봉사활동도 활력을 더해가고 있다.


2002년부터 시작한 집고치기는 지금까지 36채나 된다.


처음엔 가난한 이웃들에 새 수도꼭지 달아주기운동으로 시작했다.


사랑의 집고치기 날이면 고씨와 핵심기술자들은 직장에도 휴가를 낼 정도로 열심히 한다.


"회원들이 월 2만∼3만원씩 내는 회비와 고철 모으기로 기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고씨는 자신의 형편도 어려운데 꼬박꼬박 회비를 내는 회원들에게 한국경제신문 지면을 빌려 인사를 드리고 싶다면서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고씨 덕분에 비가 새는 지붕과 고장 난 연탄보일러를 고쳐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이 동네 오춘녀 할머니(80)는 "산타할아버지들이 따로 없다"면서 흐뭇해했다.


고씨가 이 운동을 펼치게 된 동기는 단순하다. "우리 동네가 인천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자식이 있어도 경제적인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는 독거노인들도 유독 많습니다. 이웃된 도리에서 그냥 배운 기술과 남은 힘을 보탤 뿐입니다."


고씨의 활동이 소문나면서 다른 동네에서 벤치마킹을 하러 오기도 한다.


박영환 송림2동장은 "집 고쳐주기 외에도 불우노인을 위해 알량한 세탁소 수입을 털어 삼계탕잔치를 베풀 정도로 그의 이웃돕기는 남다르다"면서 "우리 동네 천사"라고 자랑했다.


부인 김금분씨(48)도 새마을부녀회원으로 남편의 봉사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남편이 봉사활동을 나간 시간에 세탁일을 도맡아 한다. 동사무소 이두창 사무장은 "부인의 내조와 이해가 없이는 고씨의 봉사활동이 큰 열매를 맺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씨의 활동은 인정을 받았다. 지난 1일 전국새마을대회에서 동단위 새마을협의회로선 사상 처음으로 '새마을포장'(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고씨의 헌신적인 봉사활동이 알려지면서 새마을연수원 중앙회와 경기도 등 각처에서 그의 성공사례를 듣기 위해 초청강연도 줄을 잇고 있다.


충청남도 금산 농가의 2남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고씨는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농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해 아마추어 가수활동도 했으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이태원에서 15년간 무대 의상 패션디자이너로 직장생활을 했다.


하지만 무대의상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직장생활을 접고 1990년 현재 살고 있는 송림2동으로 이사와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가난한 동네이다 보니 세탁소 수입도 그저 그렇다.


"저 자신이 넉넉지 못한 생활을 꾸려가고 있지만 저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서 저는 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보다 덜 가진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모두의 행복이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친 고씨는 한밤중인데도 보일러 고칠 일이 있다면서 연장을 챙겼다.


인천=김인완 기자 i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