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성 < 한국증권연구원 연구위원 > 정부가 마련 중인 자본시장통합법안을 계기로 투자은행(investment bank)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법안은 투자은행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이 통과되기만 하면 우리 증권회사들도 경쟁력을 갖추게 되고,그 결과 자본시장 발전이 급물살을 타게 될 것으로 기대하기에는 넘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투자은행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최소한 두 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기업에 대한 활발한 정보생산이다. 정보생산을 통해 기업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해야만 투자은행은 인수할 유가증권의 가격을 올바로 책정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기업인수ㆍ합병(M&A) 관련 자문 업무도 투자은행의 중요한 업무영역으로 대두되고 있는데,이러한 자문업무 역시 기업에 대한 정확한 정보생산 없이는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투자은행이 갖춰야 하는 두 번째 요건은 평판구축이다. 투자은행은 대출을 통해 자금을 공급하는 상업은행(commercial bank)과는 달리 주로 유가증권의 형태로 자금을 제공한다. 투자은행이 시장성 있는 유가증권을 통해 자금을 공급하는 이유는, 해당 유가증권을 자신이 계속 보유하는 대신 시장에 처분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투자은행이 단기적인 이윤을 추구할 경우, 기업과 결탁해 해당 기업이 발행하는 유가증권의 가격을 의도적으로 높게 책정함으로써 투자자에게 손실을 끼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투자은행이 중개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평판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투자은행업무를 수행하는 국내 증권회사들은 전술한 두 가지 요건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기업에 대한 정보생산이 부족해 양질의 기업을 효과적으로 발굴해 내지 못하고 있으며,그 결과 주식시장에서는 투자할 만한 기업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평판을 구축한 증권회사도 극히 드물며, 이로 인해 수익성 높은 업무는 모두 외국의 대형 투자은행에 내주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결과가 초래된 이면에는 저가출혈경쟁이 자리하고 있다. 과당경쟁으로 충분한 이윤을 내지 못할 경우 기업의 정보생산에 필요한 투자가 이루어지기 어려우며,따라서 증권회사들은 자신이 인수할 유가증권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선 증권회사는 시장매각을 손쉽게 하기 위해 유가증권의 가격을 낮게 책정할 유인을 갖게 된다. 실제로 지난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이루어진 신규 상장주식(IPO)의 저가발행(underpricing) 정도는 43.5%로 외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저가발행이 지속될 경우 양질의 기업들은 유가증권 발행을 기피하게 되고,그 결과 주식시장 성장은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투자은행업무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저가출혈경쟁부터 종식시켜야 한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경우 32개의 증권회사가 투자은행업무에 뛰어들고 있어 가격경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이 잘못된 것임은 미국의 사례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미국에는 투자은행업무를 영위하는 증권회사 수가 1000여개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규주식발행(IPO) 수수료는 7%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메이저 플레이어들이 서로 깎기 경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값 받기를 통해 투자은행업무에 필수적인 인적ㆍ물적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기업에 대한 정보생산이 촉진되고 그 결과 평판이 구축되는 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을 계기로 증권회사의 업무영역이 크게 확대된다고 한들, 국내 증권회사들이 투자은행업무에 대한 투자를 늘리지 않으면 경쟁력 확보는 요원한 일이다. 대형 증권회사를 중심으로 제값 받기를 위한 리더십 발휘가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