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모도원(日暮途遠.해는 저무는데 갈길은 멀다)." 새해 예산안 심의를 위해 국회에 나와 있는 경제부처의 한 고위관료는 최근 국회의 상황을 바라보는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연말 임시국회의 회기가 사실상 보름 앞으로 다가왔지만 국민들의 실생활과 직결된 새해 예산안과 8.31 부동산 후속입법은 파행국회에 발목이 잡혀 꿈쩍도 못하고 있다. 당장 내년 예산수립이 `발등의 불'인 지방자치단체들은 국회의 예산안 늑장심의 속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고, 진정기미를 보이던 부동산 시장은 다시 동요하는 조짐이다. `달라진 국회'를 표방한 17대 국회가 2년차가 되도록 과거의 고질적 병폐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여론이 드세지고 있다. ◇지자체 예산수립 차질 `지각국회'의 최대 피해자는 지자체들이다. 국회가 예산안을 확정하고 이에 맞춰 중앙정부가 사업별 집행계획과 예산배정안은 확정한 뒤에야 지자체들이 제대로 된 예산수립과 적기 재정집행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면 지자체는 당장 내년초 예산집행에 착수하지 못할 뿐더러 수개월째 예산집행이 늦어지는 일도 종종 있다. 당장 지자체의 예산안 확정시한이 광역자치단체의 경우 17일,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22일로 다가온 상태. 국회의 예산심의가 늦어지자 지자체들은 지난 9월 정부가 발표한 새해 예산안 항목을 기준으로 `졸속' 예산을 짜고 있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결국 예산의 추가편성이 불가피하고 사업별로 자금이 남거나 모자라는 현상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정부투자.출자.산하기관에도 도미노 현상이 발생한다. 정부로부터 각종 공사와 물품을 발주받는 민간기업들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사업계획과 공고, 신청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연초 신규공사 발주를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이는 정부의 내년 경기대응에도 차질을 준다. 경기 회복세를 견인하고 양극화를 해소하는데 재정을 가급적 조기에 집중투하한다는게 정부의 입장이지만 예산안 늑장심의로 적기 재정집행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작년의 경우 예산안이 12월31일 자정에 임박해 국회를 통과,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예산 조기집행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진 바 있다. ◇부동산정책 `실기' 우려 8.31 부동산 대책의 핵심골간을 이루는 세법 개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자칫 정책타이밍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정부가 "하늘이 두쪽나도 투기를 잡겠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정작 후속입법이 차일피일 미뤄지자 부동산 시장에 다시금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는 관측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부동산 세법은 종합부동산세법, 소득세법, 법인세법, 조세제한특례법 등 4가지. 그러나 여야간 대치정국 속에 소관 상임위인 재정경제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이 국무회의를 거쳐 관보에 게재돼야 공포되는 만큼 내년 1월1일부터 부동산정책이 시행되려면 적어도 보름간의 필수적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게 정부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이에 따라 세법심의가 지연되면 납세자와 시장은 관련 법률이 언제, 어떻게 시행될지 몰라 심각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세법의 경우 법 통과도 중요하지만 시행령에서 세부적인 내용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혼란이 더욱 가중될 것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종부세 시행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중요사항들은 결국 시행령에서 구체화돼야 한다는게 정부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종부세 부과대상의 중요한 판단기준의 하나인 비사업용토지에 대한 규정과 재개발 재건축 입주권의 1가구2주택 예외문제 등은 아직까지 `미제'로 남아있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