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가 도청한 내용이 대통령 주례보고서에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 같은 도청 정보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와 이원종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등에게도 그대로 보고된 것으로 드러났다. 안기부의 도청 조직 미림팀은 김영삼 정부 시절 3년간 첨단 도청 장비로 1170회가량 엿들었으며 도청 대상자의 연 인원은 54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14일 오후 이 같은 내용의 국가정보원(옛 안기부) 도청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143일간 진행된 수사를 마무리했다. ◆도청 대상이자 보고라인인 현철 검찰에 따르면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장의 주례보고서 내용에 미림팀 수집 첩보가 포함됐다. 또 현철씨의 자문 역할을 맡았던 김 모씨는 검찰에서 김기섭 안기부 전 차장으로부터 김 전 차장이 현철씨에게 정치인들의 대화 내용을 정리한 문건을 전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진술했다. 이원종 전 청와대 수석도 현철씨가 자신에게 정치인들의 대화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를 보내 준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철씨는 2차 미림팀(1994년6월∼1997년11월)의 도청 대상 명단에도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건희 삼성 회장 서면조사 검찰은 김인주 삼성 구조조정본부 사장이 이학수 삼성 부회장의 지시로 1997년 9∼10월 이회창 후보의 동생 회성씨에게 네 차례에 걸쳐 40억∼50억원을 전달했다는 삼성측의 진술을 받았다. 이는 회성씨가 지난 99년 1월 '세풍' 사건과 관련한 재판에서 97년 당시 삼성으로부터 60억원을 받았다고 한 법정진술과 다르다. 그러나 검찰은 돈을 준 시기가 정치자금법 개정(97년 11월) 전의 일이라 정치자금법으로 처벌할 수 없고 대가성이 밝혀지지 않아 뇌물공여죄로도 처벌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자금 출처에 대해서는 98년 대검 중수부의 '세풍' 사건 수사 때 삼성은 계열사 기밀비라고 했다가 이번에는 '이건희 회장의 개인 재산'이라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회사돈을 빼돌렸다는 횡령이나 배임죄로도 처벌하지 못했다. 검찰은 비자금이라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에 체류 중인 이 회장에 대해 85개 항목을 담은 서면 조사를 했으나 증거 확보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이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홍석현 전 주미 대사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떡값 받은 검찰 간부 무혐의 전직 법무부 장관 등 전·현직 고위 검찰 간부들이 1997년 삼성으로부터 '명절 떡값'을 받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무혐의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안기부 X파일' 내용을 보도한 MBC 이상호 기자와 월간조선 김연광 편집장에 대해서는 "불법도청의 결과물인 사실을 알고 그 내용을 보도한 행위는 실정법 위반"이라며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또 2002년 국정원 도청 문건을 폭로한 한나라당 김영일·이부영(현 열린우리당) 전 의원 등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해 혐의 유무를 규명키로 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