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당 원화 환율이 950원 선까지 무너지면 더 이상 버티기 어렵습니다." (모 전자업체 A사장)


"항공유 가격이 배럴당 75달러를 넘었을 땐 정말 절망적인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나마 11월 이후 진정세를 보이고 있어

천만 다행입니다." (B항공사 관계자)


지난 4월 말 한때 원·달러 환율이 1000원 선마저 무너지자 국내 전자업체 A사장은 사색이 되다시피 했다.


최고경영자(CEO)로서는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버티기 어렵다' '절망적이다'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경영상황을 설명하는 A사장의 모습에서 긴박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환율이 다소 진정기미를 보이자 이번에는 유가가 연초 예상치인 배럴당 30∼40달러를 훌쩍 뛰어넘어 70달러에 육박하며 고공비행했다.


유가상승은 원자재 상승으로 이어져 원자재를 수입해 수출에 목을 매는 국내 기업인들로서는 눈 앞이 캄캄해지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에 2005년은 어느 해보다 경영의 불확실성이 컸던 한 해로 기억된다.


연초부터 시작된 유가폭등에 이어 원화 초강세라는 이중고까지 겹치면서 기업들은 1년 내내 마음을 졸여야 했다.


여기에 X파일 사건,두산 사태 항공사 파업 등 예상치 못했던 경영 외생변수까지 터지면서 뒤돌아볼 새 없이 숨가쁘게 달려온 한 해였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이겨내면서 맷집이 강해진 덕분일까.


다행히 국내 간판 기업들은 '위기에 강하다'는 면모를 올해 유감없이 보여줬다.


불확실한 경영환경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영토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간판 IT(정보기술) 기업들은 핵심 제품의 시장점유율을 계속 넓혀가며 디지털 강국의 저력을 보여줬다.


현대자동차는 북미 유럽시장에서 품질을 인정받으며 일본 업체들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글로벌 생산기지 구축,환율.고유가 파고 넘었다


LG 현대자동차 SK 포스코 등 주요 기업들은 글로벌 현지 생산체제 구축에 남다른 심혈을 기울였다.


LG그룹은 올해 전자 화학 기업으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국내 기업 중 가장 적극적으로 해외에 생산기지를 확보하고 나섰다.


LG전자 LG필립스LCD 등은 올 들어 디지털TV 수요가 급팽창하는 유럽과 오일달러가 넘쳐나는 러시아를 겨냥,폴란드와 러시아에 총 60만평 규모의 4개 전자 관련 신규공장 설립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내년 초부터 이들 공장의 본격적 가동을 시작으로 LG는 파주-러시아-중국-유럽을 연결,'인터컨티넨탈' 생산기지를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현대자동차는 자동차의 본고장인 미국에 진출,앨라배마 공장에서 연간 30만대의 생산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또 동유럽과 유럽시장 공략을 위해 체코에도 신규 공장건설을 추진하는 등 해외생산기지 구축에 탄력을 붙여가고 있다.


SK그룹에선 SK㈜가 10년 만에 해외광구 운영권을 획득,미국 루이지애나 노스이베리아 탐사에 나서고 SK건설이 쿠웨이트 원유집하장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등 해외진출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또 포스코는 철강업계 최초로 해외에 일관제철소 건설계획을 수립했다.


인도 동북부 오리사주 파라지역에 연산 300만t 규모의 제철소를 오는 2007년부터 짓기로 한 것.전 세계 철강업체 중 자국이 아닌 해외에 일관제철소를 짓는 것은 포스코가 처음이다.


◆한국 기업 브랜드 위상 높아졌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간판 기업들의 브랜드 위상도 한층 높아진 한 해였다.


올 들어 해외 주요 언론들이 앞다퉈 '삼성의 성공신화'를 다루면서 삼성의 브랜드 위상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윤종용 부회장이 포천지 아시아판 표지모델로 선정된 데 이어 비즈니스 위크는 '2005년 세계 100대 브랜드'조사에서 삼성을 소니보다 8단계나 높은 20위에 올려놓았다.


삼성의 브랜드 파워는 영국의 명문구단 '첼시FC'의 후원으로 연결되는 등 스포츠마케팅에서 브랜드파워를 발휘하고 있다.


LG전자도 북미 호주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최고가전업체 선정소식을 릴레이로 전해오며 한층 달라진 글로벌 위상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로 도약하는 기반을 다진 한해였다.


생산량뿐 아니라 세계시장에서의 평가와 브랜드도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다.


현대·기아차는 한층 높아진 기술력과 품질을 앞세워 북미시장에서 쏘나다,투싼 등이 최우수 품질차량으로 평가받는 등 예전과 달라진 대접을 받고 있다.


◆신흥그룹 연착륙 성공했다


GS그룹 LS그룹 등 올해 새롭게 출범한 신흥 그룹들의 연착륙도 눈에 띄는 특징으로 꼽힌다.


GS는 지난 3월 새 CI를 선보인 후 '모두가 선망하는 밸류넘버원 GS'의 기치를 내걸고 브랜드 알리기와 계열사 간 일체감 형성에 정성을 들여왔다.


서울 역삼동 GS타워를 리모델링하고 전국 3400여개 주유소 및 충전소의 로고를 한꺼번에 교체했다.


에너지 유통기업으로의 변신을 위해 최고급 친환경휘발유 생산공장을 준공하는 등 기업의 성장동력도 발굴하고 있다.


전기·전자소재 전문기업으로의 변신에 나선 LS그룹도 올해 새 CI를 내놓고 글로벌 생산기지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구자열 부회장이 직접 러시아를 방문,우수인재 확보에 나서는가 하면 중국 우시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구축한 데 이어 최근에는 베트남에 제2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계열사 간 연구개발 공유를 위한 '테크놀로지 이벤트'를 여는 등 그룹의 인적,물적 통합에도 나서며 새내기 그룹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