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만 봐도 통하는 한국 모녀(母女)의 힘,전 세계 사람들 앞에서 뽐내고 싶어요."


프랑스 여성캐주얼 꼼뜨와 데 꼬또니에(이하 CDC)가 파리에서 여는 '모녀패션쇼'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게 된 김혜경씨(45),김나연씨(19) 모녀.이들은 평소 정장,캐주얼은 물론이고 액세서리,속옷까지 공유하는 '판박이' 모녀다.


대학 교수로 있는 엄마와 수시 합격 예비 대학생인 딸. 특별할 것은 없어 보이는 이 두 여인이 어떻게 갑자기 패션모델로 뽑히게 됐는지 들어 봤다.



지난달 9일,이들에게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오후였다.


안방 전신 거울 앞에서 서로 옷을 바꿔 입어가며 코디하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잠깐 장보러 나가는데도 엄마는 꼭 둘이 잘 어울리도록 옷을 맞춰 입자고 했어요.


가끔은 좀 '유난스럽다' 싶어 귀찮을 때도 있죠." 딸 김나연씨의 하소연이다.


광택 나는 블랙 상의에 스키니(skinny) 청바지로 차려 입은 이들은 백화점으로 향했다.


딸의 대학 수시 합격 축하 선물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는데 모녀 패션모델을 선발한다는 행사 광고가 보이더라고요.


우리에게 '딱이다' 생각했죠." 이들 모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말고 거꾸로 거슬러 내려와 1층으로 향했다.


백화점 매장 한쪽에 마련된 간이 스튜디오에서 그 날의 차림새 그대로 사진을 찍어 응모를 마쳤다.


뽑히면 프랑스에 보내준다는 행사 소식을 전해 들은 다른 모녀들이 새 옷을 사고,아침부터 미용실에 다녀오는 등 부산을 떨었지만 '준비된 모녀'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백화점측에 의해 1차로 걸러진 5쌍의 모녀 사진 중 프랑스 CDC본사는 김씨 모녀를 선택했다.


500 대 1의 경쟁을 뚫고 한국 대표로 선발된 것이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유희열 현대백화점 여성복 바이어는 "서로 닮았거나,세련되게 꾸며 입은 모녀 커플은 많았지만,이들처럼 눈빛과 표정까지 꼭 닮아 있는 모녀는 없었다"며 "본선 선발 기준도 '아름답게 닮아 있는 모녀'이기 때문에 파리에서도 이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 국내에 처음 소개된 CDC는 '모녀가 함께 입는 옷'이라는 컨셉트를 가진 프랑스 여성캐주얼 브랜드다.


시즌마다 파리에서 실제 모녀를 모델로 패션쇼를 여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이 한국 론칭 기념으로 한국 대표 모녀를 선발하게 된 것. 우리나라에선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서 열린 열흘간의 선발대회에 총 500여쌍의 모녀가 응모했다.


한국 대표로 뽑힌 김씨 모녀는 본선에서 또 다시 입상하면 이 브랜드의 글로벌 화보집 모델이 될 수 있다.


평범한 그들이 일약 '스타'가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 아나운서가 꿈인 딸 김나연씨는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는 차원에서 출전하는 거지만,거기서 뽑히면 패션모델 하죠 뭐. 나중에 모델 출신 아나운서가 될 수도 있겠네요"라고 말하며 웃는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 김혜경씨도 따라 웃는다.


마주보고 웃고 있는 이들 모녀라고 서로 싸우는 일이 없었을까.


"예전에 친정 어머니가 하시던 그대로 딸한테 잔소리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가끔은 서로 잡을 듯이 싸우지만,결국 나중엔 끌어 안고 펑펑 울고 마는 게 우리나라 모녀들 아닌가요? 우리도 똑같아요."


김혜경,김나연씨는 10일 프랑스로 출국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도,서로에게 속이 상해 고개 숙여 울 때도 이들 모녀는 항상 '아름다운 동행'일 것이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