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일 넘게 끌어온 황우석 교수팀의 `난자의혹' 파문이 복지부의 공식 발표로 고비를 넘어서게 됐다. 이번 발표의 요지는 `연구원 2명이 자발적으로 난자를 기증했고, 황 교수는 이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차원에서 지금까지 이 같은 사실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는 것이다. 서울대수의대 기관윤리심의위원회(IRB)의 설명과 황 교수팀의 해명을 통해 난자기증이 이뤄질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해 본다. 『2003년 8월 서울대수의대의 황 교수팀 실험실. 연구원들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진행중인 사람 배아줄기세포 배양작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배아줄기세포를 만들기 위해서는 건강한 여성에게서 채취한 난자가 필요했다. 문제는 난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이었다. 사정이 이렇게 어렵자 그동안 배아줄기세포 연구 과정에서 늘 적극성을 띠었던 연구원 P씨와 K씨는 자신들의 난자를 직접 제공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K씨의 경우 두 아이의 엄마로서 병원에서 난치병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보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이 같은 결심으로 이어졌다. 또 P씨는 학부시절부터 황 교수팀 연구실에서 일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터라 연구를 위해서는 몸을 아끼는 성격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황 교수의 총애도 남달랐다. 이 같은 의견은 황 교수가 있는 데서도 가볍게 전달됐다. 연구 총책임자인 황 교수는 이런 얘기를 들은 뒤 "너희가 그러면 되느냐"면서 만류했다. 그러나 연구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가 황 교수님 모르게 난자를 기증하고, 익명으로 하면 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었다. 이들은 그 길로 미즈메디병원에 달려가 15일동안 과배란호르몬주사를 맞으며 난자 10여개씩을 줄기세포 연구용으로 기증했다. 채취과정에서 상당한 고통이 따르기도 했지만 이들의 `연구의욕'은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처음 이들이 난자 채취를 위해 병원을 갈 당시만 해도 이 같은 사실을 몰랐던 황 교수는 이들 연구원들이 자주 자리를 비우게 되자 그제야 눈치를 챘다. 하지만 처음 연구원들이 말을 꺼낼 당시 이들의 행동을 만류했던 터라 황 교수는 `설마 그러진 않았겠지'하면서 구체적으로 묻지 않은 채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이후 황 교수팀은 이 연구원들의 열정에 힘입어 세계 처음으로 사람 배아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데 성공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논문을 2004년 2월 세계적 과학저널인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각종 언론매체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거의 1개월이 넘게 연구실은 자축 분위기였다. P씨와 K씨도 `우리의 난자가 연구에 도움이 됐다'는 기쁨에 젖어있었다. 이때 마침 사이언스와 경쟁관계에 있는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 기자가 실험실에 인터뷰를 하러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네이처로부터 연락을 받은 K씨는 자랑스럽고, 기쁜 나머지 인터뷰에 응하면서 "나와 P연구원이 함께 난자 기증에 참여했다. 난자채취는 미즈메디 병원에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게 화근이 될 줄은 몰랐다. 그들은 네이처와 인터뷰 내용을 동료 연구원한테 말한 뒤 이게 윤리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K씨는 곧바로 네이처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쁜 영어 실력 때문에 오해가 생긴 것이며 난자를 기증한 사실은 없다"고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버렸다. 네이처는 5월호 기사에서 연구팀 소속 연구원의 난자기증 의혹을 들이대며 문제를 촉발시켰던 것이다. 그제야 황 교수도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됐다. 또 P씨와 K씨도 이제부터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황 교수는 "너희 정말로 난자를 기증했냐"고 물었다. 이들은 사실대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P씨는 "교수님, 저 이제 시집도 가야하니 제가 노출되지 않도록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K씨도 "두 아이의 엄마인데 절대 제 신분을 밝히면 안 된다"고 부탁했다. 이들은 또 "가명으로 기증했으니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황 교수를 설득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자 황 교수는 네이처 보도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연구실 직원 중 누구도 난자를 기증하지 않았다. 네이처 기자가 실험실에 취재를 왔지만 연구원 중 누구도 이처럼 말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면서 본의 아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책임자의 윤리 규정상 난자를 기증한 여성의 신원을 밝힐 수 없는 데다 연구원들의 안타까운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황 교수는 서울대수의대 IRB 조사에서 "연구원들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고 난자 기증자를 보호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다하는 차원에서 지금까지 이 같은 사실을 부인했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bio@yonhap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