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강도 개혁정책을 들고 나온 것은 기업의 경쟁력 제고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방증입니다. 그래야 일자리도 늘어나지 않습니까." 프랑스 경영자협회(MEDEF) 에마뉘엘 줄리앙 노사관계부장은 정부의 해고완화 조치와 관련,"급변하는 세계화 조류에 부응하는 당연한 조치"라며 이같이 말했다. 프랑스 정부가 지난 9월 도입한 이른바 '신고용계약(contract nouvelles embauches)' 제도는 기업의 인력운영에 숨통을 터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높은 실업률과 경기침체로 신음하는 프랑스 경제에 성장동력을 불어넣기 위해 착수한 개혁 조치다. 여기에는 '개혁 없이는 성장도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이 제도는 20인 이하 중소기업은 근로자를 새로 뽑을 때 2년의 수습기간을 둘 수 있도록 하며 이 기간 안에는 사용주가 아무런 사유 없이 해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채용 후 6개월 이전에 해고하려면 2주 전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6개월 이후에 해고하는 경우에는 한 달간의 예고기간을 둬야 한다. 프랑스는 지금까지 유럽연합(EU) 국가 중에서도 고용보호장치가 가장 철저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때문에 전체 사업장 수의 85%가 넘는 2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한 해고완화 조치는 하나의 사건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프랑스는 기간제근로자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채용사유를 엄격히 제한해 왔고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도 법에 명시해 놓을 정도로 고용보호에 적극적인 나라였다. 한국 노동계가 정부의 비정규직 법안에 반대하며 제시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프랑스 고용법규였다. 프랑스에서 개혁정책이 큰 차질 없이 추진되고 있는 가장 큰 배경은 경제가 엉망이기 때문이다. 실업률은 10%를 웃돌고 경제성장률도 지난해 2.1%에서 올해에는 1.5%로 예상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동계도 정부의 개혁에 거센 반발을 하지 못하고 시위성 파업을 벌이는 데 그치고 있다. 올해 몇 차례 정부의 개혁정책에 반대하는 파업이 있었지만 제도를 백지화시킬 만한 극렬 파업은 없었다. 신고용계약제도가 시행된 지 한 달쯤 지난 10월4일 하루 동안 5개 상급노동단체 소속 노조원 100만명가량이 정부의 개혁노선에 반대하는 공동시위를 벌인 게 전부다. 프랑스 노동부의 아나이스 부레오 노사관계국 부국장은 "노동단체와의 힘의 역학관계를 고려해 새로운 고용계약제도를 밀어붙이게 됐다"며 "그만큼 국민들의 지지와 노동계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기에 개혁정책을 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강경좌파인 프랑스노동총연맹(CGT)과 함께 프랑스의 노동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중도우파 성향의 프랑스민주노총(CFDT) 소속 스턴데 작게 노동고용교육훈련부장은 "새 고용계약제도는 노동조합에 타격을 입힌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마냥 싸울 수는 없다. 노조도 사용자측과의 협력과 고용문제 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지금 프랑스에서는 '고비용·저효율'과의 전쟁이 한창이다.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근로시간이나 복지제도는 모두 수술대상이다. 지난 3월에는 주 35시간 근로제를 사실상 폐지했다. 연장근로 시간의 허용범위도 연간 180시간에서 220시간으로 늘렸다. 업무 성격이나 형태에 따라 250시간까지 연장근로를 시킬 수 있도록 법을 고쳤다. 이에 앞서 2003년에는 재정적자 주범으로 지목됐던 공공부문 연금개혁에 손을 댔다. 납부기간을 늘리고 수령액은 줄이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연령도 60세에서 민간기업과 마찬가지로 65세로 늘리고 장기적으로 68세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프랑스 정부는 내년에는 소득세 관련법을 개정해 세금을 인상할 계획이다. 프랑스 노동계는 더이상 개혁의 걸림돌이 아니다. 개혁정책에 반대는 하지만 무산시키기 위한 집단행동은 벌이지 않는다. 그만큼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CFDT 스턴데 작게 부장의 노동운동에 대한 철학은 한국 노동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동운동은 무작정 노조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하는 게 아니다. 노조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교섭은 갈등보다 타협을 먼저 고려해야 노사가 윈-윈(win-win)할 수 있다." 파리=윤기설 노동전문 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