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연구개발특구에 있는 동영상 패키지 소프트웨어개발 전문 벤처기업인 '정직한 기술'의 이수우 사장(46)은 지난달 하나은행 충청사업본부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수출 원자재 구입 자금을 구하러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단지 기술 하나만 믿고 4억5000만원이라는 돈을 선뜻 빌려주겠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왔기 때문이다. 이 회사가 갑자기 자금이 필요하게 된 것은 지난 9월 미국 피닉스에서 열린 리테일 비전 전시회에 내놓은 제품에 대한 주문이 쏟아졌기 때문.세계 각 기업의 첨단 소프트웨어 각축장인 이 전시회에 이 회사는 비디오테이프(VHS) 영상을 DVD로 전환하는 패키지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받아 소프트웨어 부문 대상을 차지하자 미국 일본 대만 등지에서 한꺼번에 1만여개의 주문이 밀려들었고 원자재를 급히 구입할 자금이 필요했다. "한두 달을 기다릴 여유가 없어 애를 태웠는데 대출을 신청한 지 1주일 만에 통장에 돈이 들어왔습니다. 덕분에 곧바로 중국에서 원자재를 수입해 때맞춰 제품을 수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장은 규모가 작은 벤처기업에 신용으로 돈을 빌려준 것도 놀랄 일이지만 적기에 신속하게 처리해준 하나은행의 기업 지원 시스템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심사와 실사 같은 까다로운 대출 절차를 통과하려면 최소 한두 달 이상 걸리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은행측의 발빠른 움직임에는 주영일 하나은행 연구단지 지점장(41)의 역할이 매우 컸다. "여신심사위원들에게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싸들고 달려가 아무리 설명해도 고개만 갸우뚱거리며 선뜻 대출을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박종덕 하나은행 충청사업본부장의 손을 이끌고 이 회사로 데려가 직접 브리핑을 하기도 했습니다." 주 지점장은 '정직한 기술'의 기술 가치를 여신심사위원들이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판단,은행의 전산부 직원을 은밀하게 동원했다. 소프트웨어에 대해 잘 아는 전산부 직원이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소프트웨어 전시회인 리테일 비전에서 대상을 받았다면 대단한 가치를 지닌 제품"이라고 밝히자 일거에 심사위원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주 지점장은 "솔직히 소프트웨어 분야를 잘 모르면서 '정직한 기술'을 위해 발벗고 나선 것은 무엇보다 그동안 쌓아온 신뢰관계가 밑바탕이 됐다"고 전했다. 지난 99년 창업 이래 하나은행과 계속 거래를 해온 데다 월급이 밀린 적이 없고 한 번 입사한 직원은 나가지 않는 믿을 만한 회사여서 전폭적인 신뢰를 보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대전=백창현 기자 chbai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