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벤처 1세대의 분식회계 사건으로 인해 침체 분위기에 휩싸였던 벤처업계가 말문을 열었다. 최근 산업자원부의 벤처업계 간담회 자리에서였다. 벤처업계는 경영진에 대한 금융회사의 지나친 입보(연대보증) 문제가 재무비리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마저 예외가 아니란 얘기도 나왔다. 또 증권시장 상장시 대주주의 보호예수 문제도 거론됐다. 경영진이 상장을 하고도 유동성을 확보할 수 없다 보니 비리가 발생할 소지가 생긴다는 얘기다. 앞으로 정부가 어떻게 정책에 반영할지는 두고봐야 겠지만 따지고 보면 벤처기업 분식회계 문제에 있어서 정부 책임이 전혀 없다고만 할 수도 없다. 그것은 규제 때문만은 아니다. 90년대 말 벤처 붐은 정부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성된 측면이 분명히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당시 분위기에서 벤처기업들이 버블 붕괴를 제대로 예측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벤처기업의 분식회계를 지금의 잣대로만 재단할 게 아니라 그 때의 상황을 감안해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다. 벤처기업 분식회계 문제는 어차피 한번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금감위 주문은 분식회계 집단소송제가 유예된 기간 동안 벤처기업 스스로 과거 비리를 털어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과거 버블 조성에 일말의 책임이라도 느낀다면 지금보다 처벌을 경감하고 세제상의 부담을 줄여 자진공시를 적극 유도할 필요가 있다. 문제가 있는 벤처기업들도 이번 기회에 고해성사를 하고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다음 제2 벤처 붐은 정부가 아닌 벤처기업들 스스로 창출하라. 그럴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경제학자 보몰(Baumol)은 기업가(entrepreneur)는 주어진 생산가능곡선상에서 생산을 극대화하는 게 아니라 혁신을 통해 생산가능곡선 자체를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슘페터(Schumpeter)는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은 그런 기업가들의 공급량에 달렸다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경제가 성장하면서 요구되는 기업가 성격도 달라진다는 경제학자들의 연구들이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까지는 규모(scale)와 범위(scope)의 효과가 중요하지만(쉽게 말해 대기업들이 큰 역할을 하지만) 이를 넘어서려면 역동성있는 중소기업들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벤처기업들의 시대는 필연적이란 얘기다. 중요한 것은 그에 걸맞게 앞으로는 그 누구를 핑계 댈 것도 없이 책임도 스스로 져야 한다는 점이다. 진정한 기업가는 정부가 아닌 시장이 인정하는 기업가이고, 따라서 시장이 퇴출을 요구하면 변명의 여지없이 퇴출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벤처기업가들이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것들이 있다. 기술개발과 경영을 혼자서 다하겠다고 욕심낼 필요가 없다. 선진국 벤처기업들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성장단계에 따른 역할분담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기업공개 전과 후를 혼동해서도 안 된다. 투명한 경영을 통해 주주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가지고 말들이 많지만 이런저런 감시의 눈초리가 많은 대기업보다 벤처 등 중소기업의 지배구조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