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정부청사 옆에 있는 산자부 기술표준원 4동 4층 자료관에 가면 입구쪽에 누렇게 빛바랜 책자 한 권이 펼쳐져 있다. 책자의 이름은 '대한제국 법률 제1호'다. 과연 우리나라 근대 법률 제1호는 무엇에 관한 것이었을까. 뜻밖에도 이 법률 제1호는 도량형법이다. 광무9년(1905년) 3월29일 공포한 것이다. 그렇다면 도량형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도(度)란 길이를 나타내는 것이고 양(量)이란 부피를 표시하는 것이다. 형(衡)이란 무게를 말한다. 한국에서 도량형을 사용한 것은 삼국시대 이전이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와 고려사에 보면 리(里) 척(尺) 촌(寸) 등 길이단위가 나오고 근(斤) 푼(分) 등 무게단위도 표시돼 있다. 이것이 조선 세종 때엔 고유음악을 장려하기 위해 황종을 만들면서 음높이를 도량형으로 측정할 수 있는 황종척과 황종관을 만들기에 이른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도량형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최근 세계시장에서는 제품이든 서비스이든 품질이 우수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품질이 앞서기 위해선 도량형의 정밀도가 최우선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졌더라도 제품을 생산해낼 때마다 오차가 크다면 결코 좋은 제품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음높이를 자로 측정할 수 있는 수준의 정밀도를 유지해야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제품의 기술과 성능을 정확히 측정하고 평가하는 작업은 경제 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도량형을 바탕으로 한 품질경쟁력이 바로 국가경쟁력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술표준원과 한국표준협회도 그동안 품질관리(QC)운동을 펼치는 데 앞장서왔다. 하지만 정보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서비스 정보 전략 기업문화 인재육성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부문까지 도량형으로 측정해야 하는 시기에 이르렀다. 음높이를 자로 측정하듯이 품질경영도 측정하는 시대가 열렸다. 품질경영을 평가하는 이유는 손에 잡히지 않는 품질까지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기술표준원과 한국표준협회는 품질혁신 제고를 위해 1997년부터 매년 품질경영혁신으로 산업경쟁력을 향상하고 우수한 경영성과를 거둔 기업을 '품질경쟁력 우수기업'으로 선정하고 있다. 우수사례를 모델화해 후발기업들이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선정제도를 인증제도로 바꿨다. 따라서 올해 선정된 기업들은 국가가 품질경쟁력을 인증한 회사가 된 셈이다. 선정된 기업에 대해서는 한국어와 영어로 된 책자를 만들어 해외무역관과 중소기업 관련단체 등에 배포해 알리고 있다. 이 제도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가졌다. 첫째 기업의 품질경쟁력을 도량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독특한 심사기준을 가졌다. 품질경쟁력의 평가모형은 기술력과 경쟁력을 평가대상으로 한다. 경쟁력은 다시 품질경영시스템과 품질경영활동으로 나누어 평가한다. 실제 기업에서 적용하는 다양한 품질혁신활동과 기법에 대해 자로 재듯 평가하기 때문에 기업에서 스스로 자기 점수를 측정해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둘째로 이 제도는 단발성 포상이 아니다. 올해 우수기업으로 뽑힌 기업이 내년에도 다시 우수기업으로 선정될 수 있는 연속성을 가졌다. 따라서 자기 회사의 품질수준을 매년 평가해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갈 수 있다. 이런 연속성 덕분에 유니슨과 한국OSG는 9회,귀뚜라미가스보일러 현대엘리베이터 한미반도체는 8회,한전기공과 대림통상금구공장은 7회 선정됐다. 또 세정 경신공업 중앙공업 다이모스 등은 올해 첫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