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리 < 작가 > 나는 아무리 여러 번 봐도 끝이 없다는 중국 여행을 한 네 번쯤 했다. 갈 때마다 새로운 많은 것들을 보고 느꼈고,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 이 큰 나라에 얼마나 주눅이 들어 살았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시렸다. 아무리 우리네 문화의 찬란함을 스스로에게 되새겨봐도 그 규모의 웅장함에 짓눌릴 수밖에 없는 위대한 중국. 중국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무서운 나라다. 우리가 대체로 느끼고 있는 중국의 이미지는 크고 넓고 더럽고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것이다. 얼마 전 말로만 듣던 장자제의 비경을 보러 갔었다. 그 스케일이 크고 깊은 중국의 산수화가 어떻게 나왔는지,이 산에서 저 산으로 뛰어다니는 중국 무술영화가 왜 탄생하게 되었는지 실감나는 놀라운 풍경이었다. 풍경은 무척 감동적이었으나 그 풍경의 일부인 관광객들의 아우성은 거의가 다 한국말로 떠들어대는 낯익은 음성이었다. 말하자면 그곳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보다 더 한국같았다. 노상에서 군밤을 파는 아줌마들이 '천원,천원'하고 목청높여 질러대는 소리,1천원짜리 열 장을 1만원짜리 한 장으로 바꿔달라고 애걸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아마 1만원짜리를 중국 돈으로 바꾸면 이익이 남는 모양이었다. 중국 돈은 아예 필요가 없었고 한국 돈으로 사는 것이 훨씬 유리했다. 도대체 물건의 원가가 얼마인지 상상도 할 수 없이 깎아서 사야만 바가지 쓰지 않는 나라,재료가 어떻고 얼마나 비위생적으로 요리를 했든지 간에 눈 딱 감고 먹으면 무엇이든 무지하게 맛있는 나라,모든 물건이 거의 다 가짜고 믿을 게 아무 것도 없다는 나라를 한 켠으로 무시하면서 우리는 중국으로 꾸역꾸역 몰려가 그네들에게 뭉텅뭉텅 돈을 벌게 해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도 고마워하지 않는 얼굴들이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가득 가득 들어찬 장자제 호텔에서의 밤을 잊을 수 없다. 누군가 밤새도록 한국말로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곧 이어 거친 쌍소리를 써가면서 두 남자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피곤한 여정을 풀고 있는 호텔에서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며 싸우는 그들은 바로 우리 한국인이었다. 더럽고 믿을 수 없는 중국인보다 훨씬 더 창피했다. 장자제에서 시안으로 가는 비행기 속에서도 한국인의 큰 목소리들은 어디서나 들렸다. 하긴 어디를 가도 한국인은 목소리가 너무 크다. 비행기 속에서,공항 로비에서,세계의 낯선 길 위에서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대는 한국인. 문득 나 자신의 목소리 볼륨에 관해서도 의심이 갔다. 확실히 우리는 초등학교 교육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모든 교육의 시작인 가정 교육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한국인으로서의 창피함은 시안 병마용 박물관 화장실에 들어섰을 때 어디 가나 깨끗한 우리 화장실에 대한 자부심으로 금세 바뀌었다. 서양인들이 줄지어 구경하러 오는 병마용 박물관 화장실은 제대로 달려 있는 문이 하나도 없고 어디 가나 똥 천지였다. 놀라운 생각이 들었다. 중국인은 위대할 정도로 뻔뻔하다. "우리는 이렇게 더럽다. 하지만 볼 거리가 많으니까 너희들이 몰려오는 게 아니냐? 그럼 됐지" 하는 식이다. 중국 김치에 기생충 알이 없는 게 이상한 일이다. 그걸 따지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다. 한국 영화가 각광받는 세상은 참 기분좋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외국 유명 그림만 주로 사들이는 돈 많은 컬렉터들이 늘고 있는 한국 미술시장과 달리 제 나라 화가들의 그림만 사들여 엄청나게 비싼 값의 세계적 화가들로 키워내는 중국 부호들의 정신은 실로 본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서운 중국,믿을 수 없는 중국,하지만 그들에게 분명 배울 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