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진 <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 최근 여당 일각에서 계열사 간 순환출자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순환출자구조 하에서는 지배주주가 가공자본의 형성을 통해 실질지배권을 훨씬 초과하는 의결권을 행사하게 되므로 순환출자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상호출자는 금지돼 있고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통해 일정 한도 이상의 순환출자가 규제되고 있지만 이로서는 부족하며 단계적으로 순환출자를 완전 금지함으로써 기업의 지배.소유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규모 기업집단은 순환출자를 통해 계열사를 통제하고 있으므로 순환출자를 직접적으로 완전히 금지하게 되면 적어도 법적으로는 이른바 '재벌'이 사라지게 된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은 1987년 일본의 공정거래법을 본받아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로 상호출자금지 등 비교법적으로 유례가 없는 특단의 제도들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 제도들은 도입 이래 적지 않은 변천을 거쳤으나 재벌제도의 핵심인 순환출자를 직접적으로 금지한 적은 없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미국의 압력에 의해 제정된 일본 공정거래법이 재벌해체를 위해 사업회사가 다른 회사의 주식을 원칙적으로 소유하지 못하도록 한 예가 있었다. 그러나 그후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는 출자총액제한제도라는 간접적인 규제로 바뀌었고 그나마 2002년 법개정시 폐지됐다. 2003년 정부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발표한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에서도 재벌 지배구조의 가장 직접적인 해결책이라 할 수 있는 순환출자의 전면적 금지는 빠져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순환출자 금지는 현 경제시스템의 중핵을 이루는 재벌시스템의 해체를 의미하는 엄청난 개혁정책인데 효과는 모호한 반면 해소과정에서 엄청난 거래비용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현재 순환출자 억제를 위한 대표적인 장치가 출자총액제한제도인데,그 발전과정에서 수차례 개정을 통해 광범위한 예외가 인정돼 왔다는 점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순환출자를 허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상당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순환출자를 공정위가 일일이 판단하고 금지하기란 실무적으로 극히 곤란하다는 것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와 마찬가지로 순환출자 금지 역시 상당한 예외인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대규모기업집단의 지분참여를 통한 투자정책을 정부가 매번 검토해 해당 투자가 금지에 해당하는 것인지,아니면 예외사항에 해당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이는 자본시장이 전면적으로 자유화되고 무한경쟁에 노출돼 있는 국내기업에 엄청난 법적 불확실성을 안겨주는 셈이 된다. 넷째,순환출자 전면금지제도의 도입은 단순히 법조문 하나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순환출자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게 되면 현재의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존치할 근거가 사라진다는 법체계적인 문제가 있다. 또한 사업회사와 금융회사를 가리지 않고 순환출자를 전면적으로 금지할 경우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제한제도나 금융산업 구조조정에 관한 법률(금산법) 상의 5% 소유제한 제도를 존치할 근거도 사라지게 된다. 국가가 경제의 견인차인 기업지배구조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최근의 실증연구에 의하면 기업지배구조의 최선의 모형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즉 일국의 기업지배구조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외부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측면이 많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순환출자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입법 추진과 관련한 논의에서도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비교법적 검토와 현행 법제에 대한 충분한 성찰이 전제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