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법증여 증거 확보ㆍ공모자 규명이 목적 검찰이 이재용씨 등 이건희 회장 4남매에 대한 계좌추적에 착수한 것은 삼성그룹 총수 일가의 `편법 증여'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고 경영권 세습 `공모자'를 규명하기 위한 의도 등으로 풀이된다. 계좌추적 결과에 따라서는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사건' 항소심은 물론, 삼성 그룹의 지배구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건희 회장이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가 이재용씨 남매의 그룹 경영권 세습 공모 단서가 포착될 경우 관계자 사법처리와 함께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여론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 `편법증여' 증거 다지기 `에버랜드 CB 사건' 1심에서 사실상 완승한 검찰은 항소심에 제출할 `편법증여' 입증자료를 더욱 보완할 목적으로 이들 4남매에 대한 계좌추적에 전격 착수했다. 석연치 않은 CB 배정을 받은 이들 4남매의 CB 인수자금 조성경위와 에버랜드에 납입된 자본금 96억원의 용처를 파악함으로써 1996년 12월에 이뤄진 CB발행이 `자본확충'이 아닌, `편법증여'를 위한 것이었음을 확실히 입증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1심에서도 검찰과 삼성측이 여러 쟁점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지만 법적 다툼의 구도를 단순화해보면 편법증여라는 의심이 강하게 들지만 과연 세부 법률 판단으로도 배임죄 유죄를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게 관건이었다. 다시 말해 CB 배정이 이뤄지던 시기 이재용씨는 해외 유학중이었고 다른 동생들은 CB 인수자금을 이건희 회장에게서 받은 점에 비춰 통상적인 CB 인수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느냐는 `의심'을 `유죄판결'로까지 이을 수 있느냐는 것. 민사적 문제가 아닌, 형사적 문제일 경우에는 엄격한 죄형법정주의에 따라야 한다는 점과 CB 저가 배정이 상법상 `자본충실의 원칙'을 어겨 배임죄를 구성하는지 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문제였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이재용씨 등이 CB 인수자금을 마련한 경위와 기존 에버랜드 주주들이 CB를 실권한 배경, 이재용씨 등이 인수한 CB를 모두 주식으로 전환한 점 등에 비춰 `주주 우선배정을 가장한 지배권 이전'이라고 판단했다. 충분한 의심의 근거들이 발견된 이상 법리를 미시적으로 해석해 면죄부를 주기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판단해 재벌의 편법 경영권 세습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일종의 사법 적극주의적 판결을 내린 셈이다. 이 같은 적극적인 판결에 힘입은 검찰도 CB 편법증여를 통한 경영권 세습이라는 `큰 그림'을 좀 더 보완함으로써 항소심은 물론, 대법원에도 올라갈 가능성이 높은 이번 사건에서 확실히 유죄판단을 받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 수사 파장과 전망은 검찰은 1996년 12월 전후 이재용씨 남매의 계좌에 입출금된 돈의 흐름을 쫓아 삼성그룹의 지배권이 어떤 방식으로 이건희 회장에게서 이재용씨에게 승계되는지를 명확히 규명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이나 삼성 구조본 관계자들의 공모 단서가 포착될 경우 수사가 삼성 지배구조의 핵심을 겨냥함과 동시에 수사 규모도 훨씬 확대될 수 있다는 데에 이 수사의 폭발력이 잠재해 있다. 특히 1심 재판과정에서 이재용씨와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이 에버랜드 지분과 중앙일보 지분을 밀어주기 식으로 맞바꿨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만큼 계좌추적 과정에서 홍 전 회장의 역할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쟁쟁한 율사들이 포진하고 있는 삼성 법무팀도 항소심과 이번 수사에 대비해 각종 법률적 방어책을 강구할 것으로 보이는데다 항소심 역시 치열한 공방이 불가피해 검찰의 이번 수사도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개인 계좌 추적만으론 CB 인수자금 형성과정을 규명하는 것 외에 더 나아가 새로운 사실을 규명하기 어려울 수 있고 에버랜드에 납입된 자본금 96억원이 실제 자본 확충에 사용됐는지 확인도 기업회계 전반을 검토하는 문제라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검찰은 계좌추적 결과를 토대로 이재용씨 등을 소환조사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지만 삼성의 차세대를 이을 재용씨에 대한 소환을 위해서는 충분한 증거수집 여부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lilygarden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