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행희 < 한국코닝(주) 대표 leehh@corning.com > 며칠 전 일본 출장을 다녀왔다. 일차회의를 마치고 다음 회의를 준비하고 있는데 본사 인사 담당 이사가 오더니 5분만 시간을 내달라고 요청했다. 내용인 즉,올해 휴가 계획서를 제출해 달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별 참견을 다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알고 보니 본사의 높은 분께서 내 생활균형(Life &Work Balance)을 걱정해서 지시한 것이라고 전했다. 아마도 내가 다른 사람들 눈에 균형 있게 삶을 꾸려나가는 것으로 보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 조직의 리더가 균형 잡힌 삶을 꾸려가지 못할 경우 다른 조직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본사 인사 담당 중역의 설명이다. 적절한 휴식으로 에너지를 재충전해서 일을 해야 더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얘기다.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고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일수록 충분한 휴식과 생활의 균형을 취해야 한다. 이것이 곧 '위험관리'(risk management)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본사의 경영진이 직접 휴가계획까지 챙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임원들과 비교해 보면 나는 감히 휴가 운운할 계제가 아닌 것 같다. 이들을 보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철인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월차나 연차 휴가는 언감생심이고 여름휴가까지 반납하며 노조관리다,해외지사 관리다 해서 하루도 쉬는 것을 보기 어렵다. 국내 재벌그룹 총수를 지낸 분들 중 대부분이 폐암으로 돌아가셨는데 그것이 피로와 스트레스의 누적에 의한 발병이었다는 분석을 본 적이 있다. 올바른 판단과 앞선 사고로 조직을 이끌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기업의 임원들은 다른 직원보다 더 많은 휴가와 휴식으로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미국에서 리더십 교육을 받을 때 제일 많이 사용된 말이 '틀에서 벗어난 사고(out of box thinking)'였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에서 혁신적인 사고가 나오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리고 피곤에 지친 사람에게 중대한 결정을 맡긴다는 것은 또한 엄청난 도박이 아닐 수 없다. 나이를 먹어갈수록,중요한 책임을 맡을수록 틀에서 벗어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휴식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휴가의 의미를 개인과 기업의 위험관리 차원에서 고려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