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혜원 < 매트로뱅크 부지점장 marianneseok@yahoo.com > 올 하반기 최고의 흥행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서는 수많은 나비 떼가 날아다니는 장면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천천히 걸어서 집에 왔다. 초등학교 시절을 추억하며….내가 경주에서 4년간 다녔던 초등학교는 시설이 아주 열악했다. 교실이 모자라서 오전,오후반으로 나누어 교실을 사용하는 이부제 수업을 받기도 했고,책·걸상이 없어 교실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서 공부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내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를 가르친 정말 마음에 드는 학교였다. 탱자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학교.봄에는 하얀 꽃,여름에는 가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성한 잎,그리고 가을에는 노란 탱자의 향긋한 냄새가 우리를 반겼다. 학교 텃밭에서 딴 고추와 상추에 쌈장을 찍어 먹었던 점심밥 맛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선생님께서는 교실 밖에 주렁주렁 달려 있던 수세미를 따서 집에서 설거지할 때 쓰라고 하나씩 나누어 주시기도 했다. 여름방학 숙제는 잡초를 뽑아 말려서 가져오기.말린 잡초는 퇴비로 만들어져 거름으로 사용되었다. 방학 때도 우리는 번갈아가며 학교에 가야 했다. 꽃밭과 텃밭에 물을 주고 풀을 뽑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번이었던 어느 여름날,잊을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배추밭 위로 날아다니던 수많은 배추흰나비.배추 잎을 갉아먹는 애벌레를 잡아야 하는 일이 끔찍해서 나비가 싫었다. 하지만 파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던 나비 떼들의 모습은 징그럽게만 여겼던 애벌레의 기억을 지워버렸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면 탱자나무 울타리와 흰나비 떼가 떠오른다. 수업이 끝나면 운동기구 하나 없는 운동장에서 고무줄 놀이나 땅따먹기 놀이를 했다. 집에 가면 농사나 집안일을 도와야 하는 친구들은 해가 질 때까지 학교에서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씨를 뿌려서 땀 흘려 가꾼 것들을 거두면서 자연 법칙을 몸으로 알게 한 학교.나는 그곳에서 세상 모든 일에는 씨 뿌리고 가꾸는 과정이 없으면 수확도 없다는 것을 저절로 깨달았다. 살다 보면 때로는 태풍도 만나고 가뭄도 겪지만,언제나 봄에는 희망을 가지고 다시 씨를 뿌린다는 것도 배웠다. 동막골과 같이 때 묻지 않은 자연환경을 지닌 곳에 기숙사를 갖춘 초등학교가 세워진다고 하자.도시 어린이들이 부모를 떠나 일년 이상 그런 학교에서 생활하며 공부할 수 있는 제도가 생긴다면 그곳에 자녀를 보내고 싶어하는 부모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