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디자인의 박성근 사장(45). 박 사장은 기초 과학장비를 생산하는 휴먼코퍼레이션의 '디자인 홈닥터'다. 환자를 진찰하고 치료하는 주치의처럼 지난 6개월여 동안 2주에 한 번꼴로 휴먼코퍼레이션을 왕진했다. '기업이 사람이나 환자도 아닌데 웬 닥터(의사)'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중소기업의 총체적인 디자인 체질을 고쳐주는 홈닥터다. 자금력과 전문인력의 부족으로 점차 디자인 경쟁력이 저하되는 고질병에 걸린 중소기업을 위한 '디자인 홈닥터'가 뜨고 있다. 휴먼코퍼레이션의 김형일 사장(43)이 박 사장을 처음 만난 건 올해 초.연구소나 병원 등지에서 사용되는 순수·초순수 겸용 물 제조장치를 생산하는 김 사장이 해외 유명 전시회들을 돌아다니며 디자인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때였다. "아무리 기능이 우선시되는 과학·실험장비라지만 더 작고 보기 좋게 만들어야 이미 시장을 장악한 외산을 능가할 수 있다"고 김 사장은 판단했다. 하지만 디자인을 바꾸겠다는 마음만 앞세우기엔 투자할 자금이 부담스러웠다. 그때 가람디자인의 박 사장이 정부지원사업을 소개했다. 산업자원부 산하 한국디자인진흥원(KIDP)이 디자인 전문가들로 팀을 만들어 주고 컨설팅 비용으로 업체당 최대 300만원을 지원해 준다는 것.계원조형대 김재호 교수와 미취업 디자이너인 김묘진씨 등이 이 팀에 합류했다. 이들은 3월 초부터 디자인 컨설팅 및 신제품 디자인 개발작업을 시작해 그동안 수입에 의존해 온 주요 부품인 '디스펜서(일명 '건'으로 불리며 정제된 물이 방사되는 부문)를 날렵한 모양으로 재탄생시켰다. 내친 김에 김 사장은 KIDP에 디자인 혁신 개발비용을 신청,이번에는 3000만원을 지원받아 아예 본체까지 바꿔버렸다. 그는 "측정값을 보여주는 디스플레이와 본체의 재질 모양 등이 마치 가전제품의 느낌을 줘 전혀 분석기 같지 않다"며 "내년 5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화학설비산업박람회(ACHEMA)'에 이 디자인 제품을 들고 나가면 아마도 '대박'이 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지난해 해외시장 개척에 처음 나서 50만달러어치를 수출한 김 사장은 "사업을 시작한 이후 처음 쓴 나랏돈이 세계시장에서 제품 경쟁력을 한 단계 높여줬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디자인개발은 단순히 예상도를 그리는 것 뿐만 아니라 내부설계 금형설계 등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현재의 컨설팅 비용 300만원은 넉넉지 않은 수준"이라며 "디자인에 신경쓸 수 없는 중소기업들을 위해 정부가 지원예산과 사업범위를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KIDP는 작년 9월부터 지난달까지 총 10억원의 예산을 들여 285개 기업을 대상으로 디자인홈닥터 사업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031)780-2116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