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제 투기는 끝났다"고 장담하면서 내놓은 '8ㆍ31 부동산종합대책' 이후 집값 움직임은 일단 긍정적이다. 집값 폭등의 진원지였던 강남 재건축단지와 분당 등의 아파트 값이 꺾였고,다주택 소유자들의 매물이 출현하면서 분양 아파트에 대한 청약과열도 진정되는 모습이다. 당장은 거래가 끊기다시피 하고 전셋값이 급등하는 부작용도 드러나고 있지만 어느 정도 감수할 필요가 있다. 집값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 수요자들이 집을 사기보다는 우선 전세로 눌러앉아 기다려 보자는 성향으로 돌아선 때문이라고 한다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번 대책이 '세금폭탄'으로 불릴 정도로 비싼 집을 가졌거나 여러 채를 소유한 사람들이 물어야 할 세금이 갑자기 많아지긴 했다. 하지만 이 또한 문제로만 볼 일이 아니다. 집값이 올라 자산소득이 발생했다면 걸맞은 양도소득세를 물리고,비싼 집에 보유세를 높게 매기는 것을 탓하기는 어렵다. 사실 부동산 세제는 벌써부터 정비해야 할 사안이었다. 1가구 2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만 해도 그렇다. 지금껏 이들에 대한 양도세 최고세율은 36%였다. 문제는 근로소득세의 최고세율도 36%라는 것이다. 일해서 번 근로소득에 대한 세금과,집값이 저절로 올라 챙기는 불로(不勞)소득의 세금이 같다는 얘기이고 보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불공평 조세'다. 보유세 실효세율을 2009년까지 1%로 올린다는 것이 지나친 부담이라면 집값 거품이 얼마나 심한지를 말해주는 반증(反證)이기도 하다. 이 정도나마 8ㆍ31대책이 갖는 합리성이 예전과 다른 집값안정의 약발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하지만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소댕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집값 잡자고 섣불리 건드렸다가 오히려 집값 폭등의 빌미를 제공한 판교의 악몽이 가시지 않았는데도 벌써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송파가 덜컥 걱정이다. 송파 신도시 계획발표를 전후해 이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은 투기열풍의 전형이다. 며칠만에 집값이 수천만원씩 오르고,미등기 전매가 판을 치고 있는가 하면 지분 쪼개기 등 편법·탈법이 극성이란 소식이다. 이미 서울시가 이 지역 거여·마천지구 뉴타운 개발을 추진할 때부터 투기꾼들이 모여들어 집값을 부추기고 있었는데도 가만있다가 오히려 투기의 불길을 더 키운 양상이다. 허(虛)를 찔린 정부가 "지금 집을 사는 사람은 상투를 잡는 것"이라는 원색적 표현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뒤늦게 투기단속반을 투입하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한참 늦었다. 한마디로 투기척결에 대한 정부의 과신(過信)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솔직히 정부와 부동산 투기와의 싸움에서 그동안 어느 쪽이 항상 이겨왔는지는 굳이 따져볼 필요도 없다. 그것은 투기척결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방법이 서툴렀고 행동이 굼뜬 탓이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최대의 수익을 추구하는 투기적 행위는 '돈놓고 돈먹기'식의 보편적 자본주의 행태로 애초부터 뿌리뽑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독버섯처럼 퍼져나가면서 그 수법이 갈수록 진화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성급하게 '투기의 끝장'부터 말할 게 아니라 지금부터 더 눈을 부릅뜨고 투기의 불씨를 살펴야 할 일이다. 추창근 논설위원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