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성 래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 노무현 대통령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망설이던 끝에 아무래도 한말씀 드리고 싶어 글을 씁니다. 아마 대통령께선 저를 기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2년 전쯤 '원로 지식인과의 오찬'에 말석을 차지했던 한국외대 교수 박성래입니다. 제가 한말씀 드리기로 결심한 것은 대통령께서 자꾸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여 많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듯해, 옛 이야기를 한 자락 해드리려 해서입니다. 그날 오찬모임에서 대통령께서는 자신이 "세종 노릇을 원했는데,태종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반년 동안의 대통령직을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그 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세종이 한글 창제에서 측우기까지 무수한 업적을 남기며 그렇게도 훌륭한 임금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따지고 보면 그의 아버지 태종이 모든 정치적 장애물을 제거해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의 역사 해석이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지만 태종은 자신의 처남들은 물론이고, 아들의 장인인 심온(沈溫)까지 처형하여 새로 왕이 된 세종이 아무 정치적 부담 없이 나라를 이끌 수 있도록 자리를 깨끗하게 치워주었지요. 그런데 혹시 바로 그 태종이 네 번이나 임금 자리를 그만두겠다고 나섰다가,다섯 번째는 정말로 새로 세자에 봉한 충녕대군(세종)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는 사실은 잘 모르실지도 모르겠군요. 그날 청와대에서도 자신을 태종의 자리에 비견하셨으니,대통령께서는 이미 이런 사실을 알고 사임의 뜻을 말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통령님.오늘 대통령 노무현의 경우가 600년 전의 임금 태종과 같을 이치는 없습니다. 제가 읽은 등 기록으로는 태종이 처음 두어 차례 사임을 말할 때 그의 숨은 뜻은 단지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려는 꾀부리기였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의 경우는 정말로 반성하면서 세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태종은 우리 역사상 스스로 왕위를 내놓은 최초의 임금이 된 것이지요. 그런데 주목할 것이 두어 가지 있지요. 그는 1418년 6월3일 세자 양녕을 갑자기 폐하고, 21살로 가장 어린 대군 충녕을 세자로 책봉했지요. 그리고는 한 달 뒤인 7월4일 내선(內禪:생전에 왕위를 물려줌)을 발표했고,다시 한 달 뒤인 8월10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충녕이 왕위에 오른 것입니다. 흔히 원래 세자였던 양녕이 자리를 양보했다거나,그가 못된 짓을 많이 해 쫓겨났다거나 하는 설명을 하고 있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태종은 제일 어린 대군 충녕을 왕위에 앉히고 자신이 뒤에서 실권을 계속 누리려 했던 것이지, 정말로 전권을 넘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태종은 상왕(上王)으로서 모든 중대사를 좌지우지하다가 4년 뒤 1422년에 죽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제 소견으로는 대통령께서는 마음에 드는 어린 후임자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고,사임 뒤 죽을 때까지 권력을 누릴 수도 없을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또 선거제도의 변혁으로 지역주의가 없어지리라는 생각에도 저는 동의할 수가 없군요. 우리 사회의 지역주의는 국제화에 의해,그리고 전국토의 동시 생활권화로 천천히 사라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솔직히 대통령의 언행이 저는 좀 당혹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노 대통령이 한 가지는 분명하게 후세에 남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자리쯤 별것 아니다"는 민주사회의 엄정한 사실을 만천하에 실감시키는 일입니다. 이미 그 정도만으로도 노무현 대통령은 길이 기억될 것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부탁하오니,재임 중에 너무 큰 뜻을 펼치려 하지 마십시오.역사는 아주 천천히 조금씩 변화하게 마련이지,한꺼번에 모든 구악(舊惡)이 제거되고 새 날이 오는 법은 없는 듯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과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