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의 일방적인 '조기 종영'이 횡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잡음도 상당히 일고 있다. 최근 SBS는 24부작으로 기획됐던 금요 드라마 '사랑한다 웬수야'를 18부작으로 끝내기로 했다. 당연히 시청률 부진이 이유이지만 난데없이 조기 종영 통보를 받은 연기자들은 전작 시청률과 비교하며 납득할 수 없다는 격한 반응이다. MBC 역시 주말극 '사랑찬가'를 40회에서 막을 내린다. 예정보다 10회 빨라진 종영이다. 그나마 '사랑찬가'는 조기 종영이란 말이 간간이 논의돼왔다는 점이 '사랑한다 웬수야'보다 낫다면 나은 점. 충격파가 덜하다는 뜻이다. 지난 7월에 SBS 시트콤 '귀엽거나 미치거나'도 난데없는 폐지 통보를 받았다. 7월 개편 당시 SBS는 이외에도 봄에 신설된 프로그램을 없애는 가차없는 종영을 단행했다. MBC도 냉정한 조기 종영 처방을 애용하는 편. 올초 끝난 아침 일일드라마 '빙점'은 불과 종영 열흘여전에야 출연진에게 통보했다. 일일극 제작 방식은 일주일 분량을 한꺼번에 촬영하는 것이어서 전혀 엉뚱한 결말로 막을 내린 것이다. '영웅시대' 역시 MBC측은 예정된 결말이라고 주장했지만 이환경 작가의 항의성 지문과 함께 70회로 막을 내렸다. 조기 종영의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시청률 부진'이다. 시청률이 저조하면 곧바로 광고 판매 부진으로 이어져 안되는 작품을 끌고 갈 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이 방송사 편성 담당들의 항변이다. 단순한 시청률 비교에서 이젠 한 걸음 더 나아가 '제작비 대비 시청률'이라는 희한한 공식이 대입되기도 한다. '귀엽거나 미치거나'와 '사랑한다 웬수야'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SBS측은 두 프로그램의 폐지 이유에 대해 "절대적인 시청률은 낮지 않지만 제작비가 많이 들어 이 정도 시청률로는 제작비조차 건지기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 은연중 개런티 높은 출연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다. 지금껏 방송사의 일방적인 연장 방영과 조기 종영 방침에 대해 숱한 지적이 있어왔지만 이는 번번이 편성의 고유 권한과 재정 논리에 밀려 무시돼왔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노골적인 방법이 등장하고 있는 것. 조기 종영의 경우 일차적으로 가장 피해를 입는 계층은 출연 배우들이다. 배우들의 연기력과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들은 '흥행 안되는 배우'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사랑한다 웬수야'의 한 출연자는 "분명 24부작이라고 출연 계약을 맺었다. 방송사가 계약을 뒤엎으면 연기자는 마치 나 때문에 시청률이 나오지 않은 것 처럼 죄인이 돼 이를 따라야 하고 연기자가 애초 계약 내용과 달라 철회하려면 방송사의 온갖 공세에 시달려야 한다. 이런 불공정 계약이 어디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청자 권리'라는 말은 시청률 논리에 의해 실종된 지 이미 오래다. 차라리 광고주들에게 다른 각도에서 광고 효과를 산정하라는 주장을 하는 게 더 나을 지 모른다. 최근 방송계에서는 꽤 의미있는 움직임이 있다. KBS 2TV '부활'과 MBC TV '변호사들'이 비록 낮은 시청률이었지만 마니아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것. 편성의 악조건에 있었던 '부활'은 종영시 초반보다 세배 가까운 시청률 상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 역시 시청률로만 본다면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럼에도 '안녕, 프란체스카'는 시청자들의 절대적인 지지에 행복해하고 있다. 잘 만든 드라마, 좋은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이 반드시 알아본다.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두고 자신없어하는 방송사들 보다는 시청자의 판단을 믿는게 훨씬 신뢰도가 높을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