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버린자산운용이 SK㈜에 이어 ㈜LG와 LG전자의 지분마저 전량 매각, '한국 철수설'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이 외국계 투자자의 국내 투자 행태에 대한 평가와 해석이 분분하다. SK㈜ 매각을 통한 대규모 차익실현과 ㈜LG, LG전자에 대한 전격적 손절매에서 보여준 냉철한 투기자본의 면모가 국내에서 비난을 받는 한편, 일부 외국계 언론과 투자기관은 한국 기업투명성 제고를 위해 노력한 '공로자'로 치켜세우고 있다. 또 업계에서는 일련의 '소버린 사태'를 교훈삼아 국내 주요 기업들이 지배구조 투명성 및 배당성향을 높여 국내외 우호 주주를 늘리는 방식으로 경영권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 "소버린은 철저한 투기자본이었다" 소버린은 SK네트웍스의 대규모 분식 회계로 SK그룹 전체가 흔들렸던 2003년 3~4월에 SK㈜ 주식 1천902만주(14.82%)를 1천770억원에 사들였다. 이후 소버린은 지배구조 개선의 명목으로 최태원 회장의 이사직 박탈을 추진, 지난해와 올 3월 두 차례 주주총회에서 SK측과의 표대결을 이끌었고, 이 과정에서 주가는 급등했다. 그러나 결국 경영권 개입에 실패하자 소버린은 지난 6월 돌연 SK㈜ 지분 보유목적을 '경영참여'에서 '단순투자'로 바꿨고, 결국 지난달 보유주식 전량을 9천325억원에 처분하면서 두 차례 배당금을 합쳐 8천억원 이상의 차익을 거뒀다. 당시 SK측은 "그동안 소버린이 장기적 투자라고 주장해 왔지만, 이번 사례를 통해 단순히 자본이득을 추구하는 투자자임이 입증됐다"며 비난했다. 이번 LG와 LG전자 지분 전량 매각도 '손절매'의 성격이 강하다는 의견이 많다. 한 대형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소버린의 올초 ㈜LG, LG전자 주식 매입은 SK㈜ 지분 처분시 '투기자본'이라는 비난과 이미지 훼손에 대비, 장기 투자자임을 강조하려는 목적이 있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향후 LG전자 등의 실적이 부진한데다 비교적 탄탄한 LG그룹의 대주주의 지분구조로 인해 인수.합병(M&A) 재료도 부각되지 않자 손절매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SK㈜의 경우와 달리 ㈜LG의 경우 구본무 회장과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대주주 지분이 51.49%에 달하고, LG전자 역시지주회사인 ㈜LG가 지분 36%를 확보하고 있어 소버린이 쉽게 경영권에 도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기업지배구조 개선 시도..한계 부딪힌 것" 그러나 소버린의 잇단 주식보유 목적 변경과 지분 매각이 당초 의도된 전략이 아니라 실제로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시도하다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유동원 씨티그룹증권 상무는 "소버린의 한국시장 철수 움직임은 한국 기업지배 구조 개선이 아직 요원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상무는 "소버린이 나름대로 기업지배구조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으나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결국 대주주의 편을 들면서 아무런 변화를 이뤄내지 못했다"면서 "한국에서는 선진국에서 일반적인 적대적 M&A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다시 확인된 셈"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소버린이 SK㈜ 주식을 사들인 것은 SK 상황이 최악이었을 때였다"고 상기시키면서 "투자가 절실했을 때 들어와 차익을 남기고 떠난다고 해서 단순히 투기자본이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영국계 파이낸셜타임즈(FT)도 소버린의 SK㈜ 지분 매각이 알려진 뒤 지난달 19일 칼럼을 통해 "소버린의 지분 매각으로 SK가 경영권 개혁의 기회를 잃었다"고 논평한 바 있다. 또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한국 전체며, 이로 인해 한국의 경영권 리스크가와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심화될 것이라고 FT는 주장했다. ◆ "투명성 높여 경영권 공격 대비해야" 소버린에 대한 엇갈린 평가와는 상관없이, 국내 주요 기업들이 이처럼 일개 외국계 투자자에 크게 휘둘릴 수 밖에 없는 근본적 원인이 취약한 지배구조에 있다는 지적은 공통적이다. 구희진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소버린이 SK사태 등을 통해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을 부각시켰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 "국내 주요 기업 중 상당수는 매우 적은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경영권을 갖고 있는 만큼, 앞으로 비슷한 사례가 언제든지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 구 위원은 이어 "따라서 기업들은 '소버린 사태'를 교훈삼아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배당 등을 통해 주주중시 정책을 강화함으로써 국제 자본시장에서 우호 세력을 되도록 많이 확보해 둬야한다"고 조언했다. 공시 등 관련 제도상의 미비점도 지적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달 초 발표한 보고서에서 '소버린 사태'를 통해 국부 유출 가능성과 금융감독 시스템의 허점이 노출됐다며 "단순투자 목적으로 신고한 자본이 지분 취득 후 경영 참여로 전환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으므로 단순투자 자본에 대한 상세보고 의무를 강화하고 위반시에는 보유 지분 매각, 의결권 제한 등과 같은 처벌을 철저히 해야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shk99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