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금자씨'와 '동막골'서 책잔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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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출판인들이 한국에 오면 세 번 놀란다고 한다.
출판사 숫자가 2만개 이상이라는 데 놀라고 TV홈쇼핑에서 책을 상자째 파는 걸 보고 또 놀란다.
그런데도 출판시장 규모가 일본의 10%인 2조3484억원 밖에 안된다고 하면 다시 한번 눈이 휘둥그레진다.
전년 대비 1000억원이나 줄었다는 얘기에는 아예 짠하다는 표정이다.
사실 국내 출판사 숫자는 허수다.
지난해 말 2만2498개 출판사 중 책을 한 권 이상 낸 곳은 7.6%인 1715개사에 불과하다.
나머지 92.4%인 2만783개는 무실적 출판사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쇄소나 제본소의 빚독촉을 피하기 위해' 폐업신고를 하지 않고 문을 닫기 때문이다.
홈쇼핑 채널에서 책을 '박스떼기'로 파는 것도 실상을 알고 나면 허무하다.
외형적으로는 출판사 매출이 '화려한 화면발'만큼 는 것 같지만 실익은 거의 없다.
그나마 현금이 도니까 할 수 없이 제살을 깎는다.
일본의 출판사 수는 4300여개.허수가 거의 없다.
인구 대비로 보면 우리와 비슷하다.
그러나 시장규모는 10배다.
순익률로 따지면 예각은 더 벌어진다.
더구나 일본책의 국내 번역비중은 날로 늘고 있다.
지난해 출간된 책 3만5394종 가운데 번역서는 1만88종.그중 일본도서가 42.2%를 차지한다.
일본 입장에서 한국은 가장 큰 수출 상대국이자 제일 '만만한 먹이감'이다.
오죽하면 "독도는 우리 땅이라 하더라도 한국 출판 영토의 상당 부분은 일본에 편입돼 있다"는 말이 나올까.
이렇듯 한국 출판시장의 현주소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출판인들은 영화판을 부러워한다.
'친절한 금자씨'와 '웰컴 투 동막골'에 300만명이 몰렸다.
이대로 간다면 500만명도 거뜬할 거라고 한다.
'…금자씨'의 총제작비는 65억원.관객 400만명이면 매출 116억원(순익 21억원),500만명이면 145억원(순익 31억원)을 벌게 된다.
한국 영화산업을 키운 요인은 여러가지겠지만 그 중 가장 큰 지렛대가 '영화펀드' 활성화다.
창투사를 비롯한 투자회사들이 '될성부른 떡잎'에 앞다퉈 제작비를 댄다.
그런데 '영화펀드'의 절반 이상을 영화진흥위원회와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당국에서 전략적으로 댄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자,이제 출판에서도 '영화펀드'처럼 '북펀드'를 키우면 어떨까.
국내 '북펀드'는 몇년 전 등장했지만 아직 유명무실하다.
오히려 일본 자본이 '글로벌 북펀드' 형태로 상륙하고 있다.
일본책을 한국에서 낼 때 제작비를 일본 펀드가 대고 과실도 그들이 따가는 방식이다.
책을 많이 읽고 창의력을 키우자고 목소리만 높일 게 아니라 실질적인 출판진흥책을 찾는 게 급선무다.
영화에서 성공한 경험을 발판삼아 '북펀드'의 절반을 당국에서 과감히 투자하도록 하자.그래서 영화처럼 책도 멋있게 수출하자.
'모든 콘텐츠의 근본'이자 '21세기 문화 인프라의 황금광맥'이라는 출판산업.'친절한 금자씨'와 함께 '동막골'에서 영상문화와 활자문화의 '아름다운 대박잔치'를 벌이는 장면은 얼마나 멋진가.
고두현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