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분쟁,역사교과서 왜곡 등으로 한·일 양국의 국민감정은 껄끄럽지만 한반도 남쪽 부산.남해안 일대와 일본 남부의 지역경제로 넘어가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일본 물류기업들이 남해안지역에 거점을 속속 마련 중이고,도쿄로 가지 않고 부산지역 대학으로 진학하는 일본 고고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주수현 부산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은 "멀리 떨어진 중앙정부(수도)보다는 외국이지만 더 가까운 인접국의 지방경제권과 융합하는 '글로컬리제이션' 현상이 부산과 후쿠오카를 잇는 현해탄 양안에서 서서히 태동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 사진 : "부산이 좋아요" - 지난달 28일 부산 부경대에서 열린 대입설명회에 참석한 일본 나가사키 지역의 한 고교 졸업반 학생들이 부경대에 재학중인 일본인 대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


홍콩과 중국 남부 선전,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남부,유럽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접경 등에서 볼 수 있는 '지역경제통합'이 한·일 남부지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 1 일본 물류기지로 떠오르는 남해안


한·일 지역경제 교류에서 단연 앞서가는 분야는 물류. 일본 미쓰이물산은 부산 자유무역지대의 감천항에 연내 물류단지를 완공한다. 미쓰이는 중국의 일본 현지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실은 컨테이너를 이곳에 반입한 다음 일본 각지로 곧바로 보낼 수 있도록 분류,재포장한 뒤 일본 전국의 물류센터로 직송한다.


일본에서 재분류 처리하는 것보다 부산을 이용하는 것이 비용은 물론 시간도 절약되기 때문. 일본의 경우 높은 내륙운송비와 창고비,인건비로 인해 물류비용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중국 상품이 상하이를 출발,오사카항을 경유해 후쿠오카로 운송될 경우 총 6일이 걸리며 40피트 컨테이너 기준 물류비가 130만엔이나 든다. 그러나 부산을 거쳐 후쿠오카항으로 곧바로 배송되면 배송기간은 3일,비용은 75만엔선으로 줄어든다.


미쓰이의 비법(?)이 알려지면서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에 조성 중인 부산신항 배후물류단지에 입주하려는 일본 기업들의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 2006년 1단계로 개장되는 배후물류단지 2만5000여평 가운데 외국물류단지로 지정된 1만평에 투자의사를 밝힌 일본 기업이 현재 10개사가 넘는다. 일본의 물류기업 아이리스 오오야마는 부산신항 배후단지에 100억원 이상짜리 자동창고 설치를 검토 중이다.


양훈 부산항만공사 부사장은 "일본 기업들이 제조공장을 일본에 두고 있더라도 남부지역 유통망을 짜는 과정에서 부산에 창고를 운영하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전했다.


# 2 한류영향...일본 고교생 유학 러시


한류붐 이후 부산지역 대학에 진학하는 일본 고교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학원도 아닌 학부로 바로 온다. 지난달 28일 부산 부경대에는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고교 학생과 교사 20명이 입학설명회를 듣기 위해 참석했다. 지난해 12명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 부경대는 2001년부터 해마다 일본 남부지역을 돌며 유학생 유치 설명회를 열어오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일본 쓰시마 고교 학부모들과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부경대 등 부산지역 4개 대학을 방문,입학 상담을 하기도 했다.


목연수 부경대 총장은 "일본 학생들의 유학 붐은 부산지역 대학 등록금이 일본 국립대학의 4분의 1 수준인 데다 부산과의 거리도 49km밖에 안 돼 비용이 적게 들고 일본 내 한류 열풍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나다 미에코 쓰시마 고교 교사는 "쓰시마 등 일본 일부 지역은 종합대학이 없는 데다 한·일 비즈니스 분야에서 일할 기회가 많을 것으로 기대한 학생들이 부산의 대학 진학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부경대에서만 일본 학생이 모두 31명. 영어 컴퓨터 등 교육질이 일본의 웬만한 지방대학보다 괜찮다는 소문이 나면서 부산외대와 동아대 해양대에도 유학 상담을 하는 일본 고교생들의 전화와 방문이 작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부경대 국제교류센터 일본담당 김지언씨는 "일본 TV에 한국어교실과 문화강좌 등이 자주 등장하고 욘사마 열풍 등으로 일본 신세대들의 한국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면서 "골프 온천 등을 즐기기 위해 일본을 찾는 한국의 고소득층이 급증하면서 관계 비즈니스에서 직업을 찾아보려는 실리파 젊은이들도 많다"고 소개했다.


부산 출신 인력의 일본 취업도 늘고 있다. 동의대 졸업생 6명은 일본 IT업체인 오사카 소재 닥터슈미트 등에 취업하는 등 일본 진출에 잇따라 성공하고 있다.


동의대측은 "지방대 출신 핸디캡을 딛고 서울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보다는 경제가 회복되고있는 일본에서 취업기회를 찾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동서대 정보교육원도 일본 취업을 목표로 8개월 과정의 연수생 30명을 모집,지난 2001년부터 해마다 80%대 취업률을 올리고 있다.


# 3 후쿠오카.부산 '일일 비즈니스권'


부산과 후쿠오카 간은 뱃길로 3시간. 오전 8시30분 후쿠오카시 하카다항에서 출발하는 첫 쾌속선을 타면 오전 11시30분 부산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점심을 먹고도 일을 보고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일일생활권'이다. 이 항로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왕복비용도 17만~24만원 선으로 상대적으로 싸 승객이 해마다 늘면서 한·일 교류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있다.


한·일 양국의 국제선 승객은 지난해 100만5401명으로 1998년 외환위기 체제 때의 28만8889명보다 3.5배 늘었다. 여객선 비틀호를 운영하는 한국고속해운 관계자는 "과거엔 부산 등 남부지역에서만 여객선을 통해 일본으로 갔으나 요즈음은 전국적으로 뱃길이용객이 늘고 있고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라며 "한·일 양쪽 다 국내 여행 비용과 별차이가 없다는 게 알려지면서 이용객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