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추진하는 한시적 특별법 등을 통해 안기부 도청테이프 내용을 공개할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한다면 이를 단초로 한 수사가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해 `특별수사통'으로 분류되는 전ㆍ현직 검사들은 쉽지 않은 수사가 될 뿐만 아니라 성공 가능성도 매우 낮다는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로는 테이프 내용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도청시점(1994∼1997년)을 따져볼 때 최소 8년 이상이 경과된 일인 데다 단서라고는 테이프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말'밖에 없어 수사를 통한 범죄사실의 입증이 어렵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꼽고 있다. `범행'의 모의나 범행 전후의 경과가 도청됐더라도 관련자들이 대화 내용을 부인하거나 특정 범행을 실제로 저지르지 않았다고 발뺌하면 검찰이든 특검이든 아니면 `제 3기구'이든 간에 수사주체로서는 더 조사를 진척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수사선상에 오른 인물들이 범행을 부인하는 논리를 깨뜨릴 물증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유죄판결을 받아내기 힘든 것은 물론, 법원에 기소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범행 정황은 있으나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면 기소해봐야 무죄가 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공여자의 진술이 있고 뇌물이 오간 정황이 있는데도 뇌물수수 피고인들이 법원에서 줄줄이 무죄판결을 받는 것도 증거법에서 요구하는 물증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은 데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특별수사에 정통한 한 검찰 간부는 "도청테이프에 범행과 관련된 대화를 나눈 당사자들을 소환했을 때 그들이 `모르는 일이다'고 하면 그것으로 수사는 끝이다. 어디 가서 증거자료를 확보한다는 말이냐"며 `수사 필패론'을 폈다. 테이프의 편집이나 조작 가능성이 있어 테이프 내용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점도 수사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도청 대상 인사들이 나눈 대화중 일부는 미림팀 등에서 어떤 의도에 맞춰 편집됐을 수 있고 교묘하게 조작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검찰 주변에서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의 기아차 인수와 관련해 1997년 당시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과 삼성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의 대화를 도청한 테이프가 일부 편집됐다는 것은 이미 사실로 확인됐다. MBC는 도청테이프 녹취보고서를 토대로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가 삼성의 기아차 인수를 돕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뒤늦게 그 발언자는 김대중 후보라고 정정보도를 한 바 있다. 미림팀이 도청을 통해 입수한 불법적인 정보가 `세탁과정'을 거쳐 검찰에 전달돼 수사나 내사를 통해 상당 부분 걸러졌기 때문에 이번에 압수된 테이프를 근거로 새로 수사를 벌일 만한 건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당시 안기부가 도청으로 입수한 불법정보는 `범죄정보 동향' 등의 합법적인 문서로 포장돼 청와대 등을 거쳐 검찰 등에 수시로 전달됐고 수사기관은 `매력적인' 정보가 담긴 그 문건을 발판으로 수사를 벌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청테이프에 담긴 정보중 상당 분량은 이미 수사가 됐거나 내사단계에서 범죄혐의 입증이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중도에 종결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전직 검찰 간부는 "안기부가 당시 권력의 입맛에 맞는 도청정보만 검찰에 줬을 수는 있겠지만 아마도 상당한 분량의 도청정보는 이미 수사가 종료됐거나 수사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웅석 기자 freem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