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 의사들이 아시아의 의료 허브로 부상한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그러나 한 수 배워 보자는 이들의 기대는 빗나갔으며 오히려 실망감마저 느꼈다.


의료 기술 면에서 별로 배울 게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 의사들은 손재주가 좋은 데다 임상 경험도 풍부해 일부 분야의 경우 세계 최고라는 미국을 앞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료 허브가 되지 못했고 싱가포르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의료 중심지가 됐다.


싱가포르 민간 병원의 환자 가운데 30% 이상은 동남아시아와 중동의 부자들이다.




싱가포르는 한 해 20만명의 외국 환자를 유치하고 있으며 이들은 체류 비용으로만 매년 약 3000억원을 지출한다.


그렇다면 우수한 기술을 갖고 있는 한국은 왜 외국인을 끌어모으지 못하는 것일까.


'샴 쌍둥이' 분리 수술로 유명해진 싱가포르 래플즈 병원을 가면 해답을 얻게 된다.


래플즈 병원에서는 병원 특유의 알코올 냄새를 맡을 수 없다.


병원 로비에는 우리나라처럼 북적대는 접수대도 없다.


로비 중앙에서 자동 피아노가 우아한 클래식 연주를 들려주고 있고 한편에는 호텔처럼 리셉션이 마련돼 있다.


병원 2층에는 외국 환자 가족들의 관광이나 비즈니스를 해결해 주는 도우미 10여명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각 진료 과목별로 접수대가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복잡하지도 않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 있는 고객들은 신문을 읽으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병실에도 산소호흡기 연결통로 등을 모두 부드러운 재질의 목재로 가려놓아 환자가 없으면 호텔 방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싱가포르 글렌이글스 병원도 마찬가지다.


이 병원은 환자들의 대기 시간을 줄이고 병원에서 무선 인터넷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000만 싱가포르달러를 내년까지 투자할 방침이다.


임산부에게는 리무진 서비스를 제공하고 단골 고객에게는 개인별 취향에 맞춰 병실에 꽃과 책을 비치하는 차별화된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글렌이글스 병원 매니저인 티모시 로씨는 "리츠칼튼 호텔을 벤치마킹하고 있다"며 "환자들이 기대하는 의료 서비스뿐만 아니라 환자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별 6개짜리 호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병원은 질병만 치료하는 곳이 아니다.


환자에 대한 호텔식 서비스뿐 아니라 병원 입장에서 비고객으로 여겨졌던 환자의 가족들에게까지도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환자 가족들은 병원의 소개로 관광이나 쇼핑을 즐길 수도 있고 병원 내에서 잠도 잘 수 있다.


싱가포르 병원의 이런 전략은 비고객을 겨냥,보완적 제품과 서비스를 결합하라는 블루오션 전략과 맥을 같이한다.


국가와 기업의 전방위적 마케팅 활동도 주효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또 해외 로드쇼 등을 통해 싱가포르 병원의 우수성을 알리는 홍보전도 벌이고 있다.


래플즈 병원이 세계적으로 이름난 의사를 데려와 샴 쌍둥이 분리 수술 같은 국제 이벤트를 만든 게 그 예다.


글렌이글스 병원에서 한국인 클리닉을 운영하는 문호성 원장은 "의료에 비즈니스적 접근 방식을 접목하면 싱가포르 이상 성공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