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 회사 주식을 매집해 1대 주주가 된 뒤 이 회사 경영진을 시켜 전환사채(CB)를 저가에 발행받은 혐의(특가법상 배임)로 기소된 펀드 운용자에게 항소심 법원이 유죄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진 뒤 검찰이 `에버랜드 CB 저가발행' 사건과 관련해 재판부에 참조판례로 제출했던 사건이다. 서울고법 형사6부(김용균 부장판사)는 15일 대주주에게 저가에 CB를 발행해준 혐의로 기소된 LCD용 편광필름 제조업체 A사 이사진 3명과 이를 이용해 이득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대주주 서모(59)씨에게 1심을 깨고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A사는 2000년 5월 단일주주인 ㈜새한의 워크아웃으로 코스닥 등록계획이 무산됐으며 서씨가 이 회사 주식을 주당 4만3천원∼5만9천원에 매집해 1대 주주가 된 뒤 100억원 어치 CB를 주당 전환가 2만2천원에 발행받자 소액주주들이 "CB를 저가에 발행해 주가하락이 초래됐다"며 서씨를 고소했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A사 주식 시가는 검찰이 주장하는 4만3천원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2만2천원은 넘는다고 판단된다"며 "이사진은 회사 이익을 고려해 CB 발행 규모와 가격을 정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고 실질적 흥정도 없이 대주주의 일방적 요구에 따랐으므로 업무상 배임죄가 인정된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A사의 코스닥 등록 주관 증권사는 A사 적정주가를 2만7천원∼3만2천원으로 예상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CB 발행시점에는 A사가 코스닥 등록에 실패하고 ㈜새한의 부도로 경영환경이 악화돼 예상 적정주가는 더 낮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서씨가 이사진의 의사결정을 강요했다는 증거가 없고 서씨의 펀드는 경영난을 겪는 유망기업에 투자해 기업구조조정과 인수합병 등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의 적법한 투자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A사 이사진에 대해서도 "CB 발행을 통해 100억원을 유치하는 것이 회사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고 이사회 결의시 CB 가격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며 서씨에게 특별히 이익을 제공할 동기나 의사가 없었다고 여겨져 배임죄를 묻기 어렵다"고 밝혔다. 서씨는 CB 발행대금 100억원을 A사에 납입한 뒤 A사 대표이사에게 이 돈을 금융기관에 담보로 제공토록 해 150억원을 대출받은 사실이 드러나 특가법상 횡령죄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됐으나 재판부는 CB 발행과 불법담보 제공은 별개 문제로 판단했다. `에버랜드 사건'이란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성격을 갖는 에버랜드 경영진이 1996년 최소한 주당 8만5천원에 거래되던 에버랜드 CB를 발행하면서 기존 주주들이 96억원 어치 CB를 대량 실권하자 이재용씨 남매에게 주당 7천700원에 배정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lilygarden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