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돌아온 직후 나는 너무 진지했다. 몸담았던 대학에서 다섯 번째 예산 관련 회의가 열렸을 때 나는 못참고 학장에게 대들었다. 매주 회의해도 압력에 의해 뒤바뀐다면 도대체 무슨 소용이냐고.학장은 말 없이 창밖만 내다봤다. 다음 학기에 나는 그곳에 모습을 나타내지 못했다. 쫓겨났던 것이다.' 중국 작가 임어당(林語堂)의 글이다. 임어당은 또 그 대학에선 2주마다 새 학칙을 만들었지만 수위는 방문객이 와도 어디로 안내해야 할 줄 모르고,기숙사 복도는 걷다 거꾸러질 지경이었다고 회고했다. 교내 정책 역시 학장의 순간적인 생각에 따라 늘었다, 학생들의 대자보에 위협당해 줄었다고도 했다. 거듭되는 회의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결론이 나지 않고 결과가 제대로 실천되는 건 더더욱 적은 게 20세기 중반 베이징대 교수를 지낸 임어당의 경험에 국한된 일일까. 지금도 많은 곳에서 회의는 윗사람의 일방적인 훈시 내지 명령 하달 시간이고,따라서 아랫사람들은 앞에선 경청하는 척하곤 돌아서면 나몰라라 하는 건 아닐까. 망하는 회사의 공통점으로 '술 자리 예절은 깍듯한데 회의 때 하급자를 윽박지르는 등 업무 예절은 형편없다''회식자리는 잦지만 상사가 하는 말에 고개만 끄덕이고 애꿎은 술만 낭비한다' 등이 지적된(김경준 '잘되는 회사는 분명 따로 있다') 걸 보면 그같은 의문이 기우만은 아닌 듯 보인다. LG전자 디지털디스플레이(DD) 사업본부에서 모든 회의는 1시간 전까지 자료를 배포하고,1시간 안에 끝내며,1시간 안에 결과를 공유한다는 내용의 '111 캠페인'을 펼친다고 한다. 회의석상에서 자료를 나눠주다 보니 내용 설명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결과적으로 1시간 안에 끝나는 회의가 30%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긴 회의 치고 성과가 선명한 경우는 드물다. 자연히 구체적 실천지침이 나오지 않고 결국 유야무야 원점으로 돌아가기 일쑤다. 좋은 회의란 충분히 준비되고,빨리 끝나고,결론이 공유되고 실천 여부가 평가되는 그런 회의일 것이다. '111 캠페인'의 사회적 확산을 기대한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