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 < 딜로이트컨설팅 파트너 > 인간의 지능과 의지가 시장과 대결해서 이긴 적은 없다. 시장원리는 자연법칙처럼 주어진 것이기에 적응하고 활용할 대상이지 싸워서 이길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실패에는 시장원리의 회복으로 대응해야지, 시장을 실패시킨 세력과 싸우겠다는 것은 오히려 더 큰 재앙만 부를 뿐이다. 최근 부동산시장의 혼란은 시장기능의 실패가 원인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부문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그러나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을 시장실패로만 보는 것은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파트 가격 폭등의 진원지로 비난 받고 있는 강남아파트 가격은 1989년에 이미 평당 1000만원을 넘어섰다.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4968달러, 회사채 금리는 15% 수준이었다. 16년이 흐른 2004년 1인당 국민소득은 1만4162달러로 3배가 늘었고, 회사채 금리는 4%로 4분의 1로 떨어졌다. 단순계산으로는 12배의 자산가격 상승여력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다 인구통계학적인 수요변화 요인이 생겨났다. 한국전쟁 후 베이비붐의 절정기인 1959~1962년생들이 40대 전후가 되고 경제력을 갖추면서 교육·문화여건을 갖춘 중대형 주택 (Quality House) 수요가 늘어난 것이 최근 시장변화의 핵심요인이다. 1980년대 후반 베이비붐 세대가 결혼연령에 도달하면서 아파트 수요가 급증해 1987년부터 4년간 연평균 20% 이상의 가격상승이 일어났던 점을 상기하면 이들이 부동산시장에 미치는 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부동산정책은 이러한 시장변화를 읽고 대처하기 보다는 사회통합의 구호아래 서민주택 보급, 임대주택 활성화 등 명분에 매달리면서 때아닌 투기세력과의 전쟁까지 선포하는 지경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부동산 폭등은 천재(天災) 도 인재(人災) 도 아닌 관재(官災)다. 시장원리에 입각한 정책만이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례는 2000년 전 로마제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탈리아 반도의 조그만 마을에서 출발한 로마는 성장을 거듭하여 BC 3세기 1차 포에니전쟁에서 카르타고에 승리하고 시칠리아 섬을 속령으로 삼는다. 문제는 곡창지대였던 시칠리아에서 생산한 밀이 로마 국내산의 절반 이하 가격으로 로마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발생했다. 로마의 농업은 급격히 경쟁력을 잃게 되고, 자작농에 기반한 로마경제는 전반적인 위기에 빠진다. 로마는 군사적으로는 승리했지만 냉정한 시장원리에는 승자도 예외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로마사회 내부의 불만은 높아만 갔지만, 로마는 시칠리아산 밀의 수입을 금지시키거나 수입산 밀에 세금을 물리는 식의 손쉽고 인기영합적인 정책보다는 시장원리에 충실한 장기적 선택을 했다. 밀 생산은 시칠리아에 맡기고 로마는 경쟁력을 가진 다른 작물을 찾았던 것이다. 이탈리아 반도는 밀의 대량생산에 적합한 넓은 평야는 적지만 포도나 올리브를 생산하기에는 적합한 지형이었다. 이 무렵부터 로마 근교의 농지부터 포도밭이나 올리브밭으로 바뀌기 시작하였고, 이는 로마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로마 농업은 재건되었고 포도와 올리브는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탈리아 반도의 주요 작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위정자가 가진 선의와 의지는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경제는 정치와 달리 명분과 당위성으로 움직이는 메커니즘이 아니다. '경제인이라면 정치를 이해하지 못해도 성공할 수 있지만, 정치인은 경제를 몰라서는 곤란하다'는 시오노 나나미의 지적을 곱씹어보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