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산 < 소설가 / 대하소설 '삼한지' 작가 > 박지성은 훌륭한 선수다. 볼을 잡으면 순식간에 두세 명의 상대를 제치고 쏜살같이 돌진하는 순발력과 돌파력이 가히 일품이다. 경기의 흐름을 읽는 눈도 탁월하고 빈곳을 파악하는 감각도 단연 돋보인다. 운동장에서 직접 경기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박지성이 얼마나 성실한 선수인가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도대체가 그는 몸을 아끼거나 사리는 법이 없다. 그라운드에서 축구공 다음으로 가장 많이 바닥에 구르는 물체가 박지성이다. 저런,저래 가지고 일어날까? 그를 아끼는 관중들은 줄곧 안타까운 탄성을 연발하며 손에 땀을 쥐지만 그는 번번이 다시 일어나서 팬들을 열광시킨다. 최근 그가 햇수로 4년간 한솥밥을 먹은 히딩크와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을 떠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세계 최고수준의 잉글랜드 프로구단에 입단했다. 히딩크 감독은 시기상조임을 이유로 박지성을 만류한 모양이고,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지성은 오랜 고민 끝에 영국행을 결정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가 그야말로 가관이다. 사건은 영국의 스포츠 전문채널 '스카이 스포츠'가 지난달 26일자 인터넷판을 통해 히딩크 감독이 박지성은 결국 벤치신세로 전락할 거라고 악담을 퍼부었다는 보도를 하면서 비롯됐다. 결과를 먼저 말하면 이 보도는 아주 잘못된 것이다. 히딩크가 누구인가? 그는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축구의 신화를 이끈 주역의 한사람이자 오늘의 박지성을 있게 만든 장본인이다. 월드컵 이후 에인트호벤 감독을 맡으면서 박지성과 이영표 선수를 네덜란드로 데려간 사람도 그였다. 우리 선수들이 유럽 프로리그에 적응하지 못해 고생할 때는 이를 묵묵히 참고 기다려주기도 했다. 꽃은 씨를 심고 때를 기다려야 핀다. 기다려도 그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물도 주고 애정도 쏟아야 한다. 박지성의 오늘이 만개한 꽃송이라면 그 뒤엔 히딩크라는 탁월한 스승이자 조력자가 있었다. 그런데 히딩크는 박지성의 오늘이 결코 만개한 꽃송이가 아니라고 판단한 듯하다. 이제 갓 피기 시작한 꽃봉오리쯤 될까. 두 사제 간의 이견은 거기서 야기됐다. 히딩크는 제자의 축구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기가 미래에 있을 거라고 보았고,그럴 때까지 자신의 슬하에서 실력을 더 갈고 닦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스승은 제자가 눈에 보이지만 제자는 일정한 기량을 갖추면 스승보다 세상에 더 정신이 팔린다. 히딩크는 굳이 떠나겠다는 제자가 걱정스러워 몇 마디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나처럼 너를 기다려주지 않을 테니 어떻게든 빨리 적응해라.너보다 훌륭한 선수들도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 벤치 신세로 전락하는 사례를 나는 수없이 봤다. 잉글랜드 리그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더 노력해서 감독의 코드를 파악하는 것만이 네가 주전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내용은 그것이었다. 그것이 영국의 저질 황색언론을 타면서 국경을 뛰어넘은 사제 간의 아름다운 정리를 이간질시키고 세상의 여론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갔다. 인터넷이 뉴스와 정보 전달의 주요 매체로 급부상하면서 국내외 할 것 없이 이런 유형의 무책임한 오보와 저급한 기사들이 활개를 친다. 출처도 알 수 없는 뉴스,아니면 말고 식의,혹은 무조건 눈에 띄고 보자는 식의 자극적인 소재와 제목,심지어 맞춤법조차 틀린 기사들이 매스컴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사회적인 책임과 도덕감도 무시한 채 연일 세상을 어지럽힌다. 풍요로운 물질 속에서 자꾸만 초라해져 가는 우리네 인생처럼,수많은 활자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헤아리기가 더욱 난망해지는 게 요즘의 세태인 것 같아 안타깝고 착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