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하이닉스의 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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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반도체가 5억달러 규모의 해외채권 발행을 기어이 관철시켰다.
연 10%의 고금리를 부담하고서다.
바로 한 달 전 LG전자가 같은 시장에서 발행한 채권보다 5%포인트나 높은 금리 조건이다.
물론 이제 막 정상화의 문턱에 도달한 하이닉스를 글로벌 우량기업인 LG전자와 동급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이유도 다르다.
하이닉스가 해외채권 발행을 강행한 것은 구조조정촉진법을 조기 졸업하기 위한 것이다.
내년 말로 예정된 경영정상화 시한을 1년6개월 이상 앞당겨 한시라도 빨리 경영의 자율권을 확보하고 새로운 출발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 방식이 10%의 고금리를 지불하는 것이라면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다.
지난 몇 년간 임금동결을 감수한 종업원,헐값에 출자전환해준 채권단,감자를 당한 소액주주들의 주식 등 많은 이해관계자들의 희생과 양해 속에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기에 특히 그렇다.
하이닉스는 현재 국제신용등급이 '투자 부적격'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한다.
또 애초에 채권단과 경영정상화 조건으로 합의한 '리파이낸싱(기존 채무를 상환한 뒤 새로운 차입을 일으키는 것)'의 틀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과정이라고 해명한다.
그러나 현재 하이닉스의 재무구조나 수익 창출능력으로 볼 때 신용등급 상승은 시간문제다.
채권 발행시기를 조금만 늦추면 더 좋은 조건으로 자금을 얻어쓸 수 있다.
회사 일각에선 해외채권 발행으로 신용등급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지만 이는 주객이 전도된 것 아닌가.
게다가 하이닉스는 당장 달러화 표시 자금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
국내 외환당국은 넘쳐나는 달러를 해소하기 위해 해외부동산 매입 규제까지 풀어놓은 상태다.
국내 은행들이 장기 대출을 꺼린다는 이유도 대고 있지만 산업은행등은 만기 7년 이상의 대출을 해줄 용의가 있음을 밝힌 적이 있다.
리파이낸싱을 국내와 해외 부문으로 나눠 5 대 5의 구조를 유지할 이유도 없다.
구촉법 졸업이 최대의 숙원과제라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현행 자금조달 방식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정상화의 빛을 퇴색시키지는 않을까.
시한에 쫓긴 정상화 작업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지고 있다.
조일훈 산업부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