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장관급 회담이 열렸던 서울 워커힐 호텔은 회담 기간 내내 '섬'이었다. 회담장 주변은 경찰에 의해 이중삼중의 막이 쳐졌다. 호텔 입구엔 경찰버스가 주차돼 있었고 호텔 본관으로 통하는 길목엔 어김없이 안전요원이 배치돼 차량 트렁크까지 일일이 확인했다. 회담장으로 사용된 호텔 별관의 출입문을 통과할 때도 검색을 받아야 했다.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납북자 단체의 시위와 이로 인한 불상사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달리 해석하면 모처럼 찾아온 회담 분위기를 좋게 가져가기 위한 세심한 '배려'이기도 했다. 워커힐호텔은 보안유지와 인적 통제가 쉬워 당국이 회담장으로 선호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한강과 주위의 절벽들에 둘러싸인 입지만으로 하나의 요새와 다름없다. 호텔이 들어선 아차산 자체가 삼국시대 고구려가 신라의 북침을 막기 위한 제1방어선으로 난공불락의 역사를 갖고 있다. 전방부대 총기난사 사건이 터진 'GP'는 육지의 섬이라고 불리고 있다. 병사들은 군사분계선(MDL)을 감시하는 최전방 초소인 GP의 고립무원 상태를 이렇게 표현했다. 두 사건은 남북장관급 회담기간 내내 마치 경쟁하듯이 전 언론의 헤드라인을 번갈아 장식했다. 당일의 진행 상황에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톱 뉴스를 차지했다. 장관급 회담이 끝난 23일 밤에는 사상 유례없는 12개의 합의사항을 이끌어 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흥분에 찬 목소리와 총기난사 사건으로 젊은 아들을 잃은 유족들의 울부짖음이 몇 분의 시차를 두고 오버랩됐다. 한쪽은 축하와 환호가 넘쳤고 다른 한쪽은 울분과 슬픔이 배어났다. 과연 두 사건은 별개인가. 결국 100만명이 넘는 남북한 젊은이들이 155마일의 철책선을 마주보며 총끝을 겨누는 현실이 서울 도심과 비무장지대(DMZ)에 섬 아닌 섬을 만들어낸 것은 아닌지. 24일 오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직원들이 나와 밝은 인사로 북측대표단을 전송하면서 워커힐호텔은 평온한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적십자,경제협력추진위,장성급 군사회담 등등 수많은 남북대화의 장을 언제까지 '섬'으로 만들 것인가. 북측 대표단을 떠나보내면서도 이 같은 생각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이심기 정치부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