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경찰서가 군으로 치면 장성급 고위간부에 해당하는 현직 경무관의 비리의혹을 자체적으로 인지해 소환, 조사한 것은 경찰 창설 이래 처음이어서 경찰 내부에서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기 피의자 비호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 강남경찰서는 23일 서열상 일선경찰서장인 총경보다 1계급 높은 김인옥(53ㆍ여) 경무관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의 별'로 불리는 경무관은 한 명뿐인 치안총감(경찰청장), 서울지방경찰청장급인 치안정감, 지방경찰청장급인 치안감에 이어 경찰에서 네 번째 높은 계급으로 경찰관으로선 최고 영예의 계급으로 여겨진다. 10만명에 가까운 현직 경찰관 가운데 경무관 이상 고위간부는 전체의 0.06%인 60명 수준에 불과하다. 경찰은 그동안 경무관급 이상 고위간부들의 비리첩보가 입수되더라도 본인에게 통보하거나 내부 보고 라인을 통해 상부에 보고만 하고 수사를 하지 않는 게 관행이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실제로 경찰은 1980년대 중반에 개인적 감정 때문에 경찰관서 여직원을 권총으로 쏜 경무관을 일선서에서 조사한 것을 제외하고는 경무관급 이상 간부를 조사한 사례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1980년대 여직원 살해사건의 경우 온국민에게 이미 공개된 사안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리 의혹을 자체 범죄정보력을 통해 입수한 이번 사안과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는 데 이견이 없다. 강남경찰서는 사기 피의자 김모씨에 대한 조사를 하던 중 김 경무관이 김씨에게 강순덕 경위를 소개해주고 소년소녀가장돕기 성금 1억5천만원을 받은 사실을 인지해 이날 전격 소환했던 것이다. 경무관급 고위간부를 소환조사한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지만 조사과정에서 아무런 특혜를 제공하지 않은 점도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조치로 평가된다. 우선 경찰은 소환 시점을 미리 알려 김 경무관의 경찰서 출두 모습을 언론에 공개했다. 조사도 김 경무관으로선 `까마득한 하급자'인 경감급(강력1팀장)이 맡았고, 조사 장소도 벽이 투명유리로 돼 있어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강력팀내 사무실을 택했다. 현직 경무관에 대한 예우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광경인 셈이다. 일선경찰이 위계질서가 엄격한 조직 분위기를 과감하게 극복하고 경무관급 간부를 조사할 수 있었던 것은 허준영 경찰청장의 `지원사격' 덕택이었다. 올 초 김 경무관을 제주지방경찰청장에 발령냈던 허준영 경찰청장은 김 경무관과 강 경위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한 점 의혹도 남겨선 안 된다고 수사팀에 특별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허 청장은 또 "아무런 부담 없이 수사해야 한다. 조사가 철저히 이뤄지면 수사팀 관계자들을 포상하고 특진시키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경찰 고위간부는 전했다. 비리 혐의가 있는 동료나 상급자를 조사하는 경찰관들이 조직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는 문화가 더 이상 존재해선 안 된다는 지침을 일선서에 내려보냈던 것이다. 한편 경찰 수뇌부가 `부패근절'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이번 사건에 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현재 진행 중인 수사권 조정 논의와 맞물려 대대적인 내부 감찰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썩은 환부를 과감히 도려내지 않고서는 검찰과 국민 앞에서 떳떳하게 `수사권 현실화' 요구를 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경찰 내부에 형성됐다는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을 실감한다. 가지가 많은 만큼 자정노력도 훨씬 더 고강도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내부 분위기가 전례없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공병설기자 k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