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구속영장을 보면 대우그룹의 분식회계의 역사는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대우 분식회계가 1997∼1999년에만 국한한 게 아니라 1980년대 초반 이후 김 전 회장의 지시로 끊임없이 저질러 온 일종의 `악마의 유혹'이었던 것이다. 16일 발부된 김씨의 구속영장에 따르면 ㈜대우는 1973년께부터 부실기업을 인수하고 새로운 회사를 설립해 사업을 확대해 나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대부분 금융차입에 의존한 탓에 금융비용 부담이 다른 그룹에 비해 훨씬 컸다. 1982년 영국 런던에 해외금융법인 BFC를 설치한 ㈜대우는 국제금융팀 파견직원 5명이 김우중 회장의 지시에 따라 자금을 관리하면서 국내 외국환관리법 규제를 피하고 회사 내부의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막대한 자금을 운용해왔다. 하지만 BFC를 통한 해외차입 금액과 가공의 수입서류를 만들어 수입대금으로 BFC에 송금한 금액의 재무제표 반영으로 그룹 전체 신인도 하락이 예상되자 1980년께부터 매년 김씨 지시로 분식회계를 하게 됐다. 분식회계는 김씨가 ㈜대우와 대우자동차, 대우중공업 등의 부채비율과 배당률, 단기차입금 규모 등을 정해 장병주 ㈜대우 대표이사나 강병호 대우차 사장, 김태구 대우차 총괄사장, 전주범 대우전자 대표이사 등에게 지시한 데서 시작했다. 구체적인 분식회계 사례를 보면 김씨가 1998년 2월 장병주 당시 ㈜대우 대표에게 "㈜대우 부채비율을 400% 이하로, 배당률을 2%로 맞추라"고 정해줬고 장씨는 무역ㆍ관리부문, 건설부문, 해외건설부문 등 실무진에 지시해 마이너스 전표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부채를 줄이고 순이익을 늘리는 수법을 썼다. ㈜대우는 1997년에는 자산 24조3천억원, 부채 34조4천억원, 자본 -10조1천억원으로 자본잠식 상태인 장부를 자산 14조2천억원, 부채 11조4천억원, 자본 2조7천억원으로 조작했고 1998년에는 자산 25조9천억원, 부채 36조2천억원, 자본 -10조3천억원을 자산 26조7천억원, 부채 22조8천억원, 자본 3조8천억원으로 위장했다. 속으로는 만신창이가 된 회사의 재무제표를 이런 식으로 꾸민 뒤 국내 금융기관에서 거액의 신용대출을 받거나 회사채 보증채무를 떠안기거나 무보증회사채를 발행해 갚지 않은 금액이 1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검 중수부 관계자는 "기업으로서는 회계 결산 결과 적자가 발생하면 기업 신인도가 하락하고 대출이 막히는 한편 기존 대출금에 대한 상환압력이 가중되기 때문에 분식회계를 통해 현금을 확보하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 기업가로서는 `악마의 유혹'인 셈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정 그룹의 분식회계를 통틀어 수사하는 첫 사례인 대우 분식회계 사건은 공적자금비리 수사의 출발점이 될 만큼 우리나라 검찰 수사의 한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공적자금이 우리보다 10배 이상 들어간 일본에서도 이런 처벌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lilygarden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