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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칼럼] 소송과잉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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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준형 < 서울대 교수·공법학 > 헌법이 농락당하던 시절 우리는 법이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를 희구했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공권력 남용과 인권탄압의 광경을 바라보면서 법을 정의롭게 다시 세우는 일이야말로 민주주의 건설의 핵심적 과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부산 마산 광주,그리고 6월항쟁을 거쳐 우리는 만시지탄의 민주화의 길로 접어들었고 국방색 사회통제 시스템이 와해되는 것을 목도했다. 뻔뻔스런 총칼의 지배가 퇴각함에 따라 생길 힘의 공백은 법이 메워주리라고 기대했다. 그런 기대는 자연스런 것이었다. 사람들,특히 정치권력이 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법이 정부와 시민,자본과 노동,중앙과 지방 사이의 갈등과 분쟁을 해결해 줄 것을 염원했다. 과거 분쟁해결에의 기여도가 낮았던 법이 많은 분야에서 빈번히,심지어는 말없던 다수의 약자를 위해서조차도 동원되기 시작했다. 80년대 말부터 헌법이 복권되기 시작했고,소송사건통계는 민ㆍ형사,행정을 불문하고 지속적인 상승곡선을 그었다. 어느새 우리나라는 고도로 발달된 소송국가의 외관을 띠고 우리는 사법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다. 사법과잉의 현상은 우리 시대의 일상이 돼버렸다. 대규모 국책사업 중 지역주민이나 시민단체들로부터 제소를 당하지 않은 경우는 드물게 됐고, 노사분규 교육갈등 등 온갖 종류의 분쟁에서 걸핏하면 소송이 제기되고 있으니,소송을 걸거나 당하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사법제도는 국가가 자신의 존속과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마련한 굳건한 보루이자 시민의 평화와 복지를 위한 핵심적 정부서비스이다. 중요한 갈등현안에 법이 동원되는 것,아니 분쟁해결을 위해 법에 호소하고 재판제도를 이용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공익과 사회질서를 방어하고 손상된 권익을 구제하는 범위 안에서 사법제도는 보호적 정의에 복무한다. 그러나 소극적ㆍ방어적ㆍ회고적 정의 수호기능 외에 사법이 정책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거나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대책 없이 뻣뻣하기만 한 행정부,유권자의 기대를 밥먹듯 저버리는 국회가 소임을 다하지 않을 경우 사법부의 정책관여는 마지막 희망이자 심판이 된다. 그런 뜻에서 사법적 결정이 정책과정에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흥미진진한 연구대상이자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국가정책에 대한 이견과 불만을 무조건 재판으로 해결하겠다는 사법과잉 현상이 지나치게 확산되는 것은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법원에서야 재판부에 따라 오히려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려는 성의를 보임으로써 사법적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 일부 승소사례도 나오고 기획소송을 통한 저지효과를 거두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런 성공사례에 힘입어 '정의의 사도' '생명의 수호자'를 자처하면서 모든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가려는 태도야말로 우려할 만한 일이다. 물론 법만으로 되는 일도 없지만 법으로 안 되는 일도 없다. 그러나 사법과잉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도 있다. 고도의 정책적 판단이 요구되는 문제를 법적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법리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정책론의 관점에서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사법부가 본래 정책결정이나 평가를 위해 만들어진 기구는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다수의 약자로 조직화되지 않고 분산돼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해 효용을 발휘하는 집단소송도 남용을 막지 못하면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 정치의 실패나 기회주의적 야합으로 생긴 문제의 해결을 헌법재판소나 사법부에 전가하는 일이 빈번해 질수록 법치주의의 내상은 악화된다. 엊그제 제기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 위헌소원심판은 신행정수도법 위헌결정으로 사실상 수도분할이라는 논란의 여지를 남김으로써 첫 단추를 잘못 꿴 헌법재판소를 결국 자가당착으로 내모는 사법과잉의 또 다른 사례일 뿐이다. 물론 헌법소원을 철회하라 윽박지르는 세력도 우리 시대 법치의 건강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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