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메디컬 스쿨 거부 명분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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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철 <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 >
나는 1995년 사법개혁의 열풍이 불 때 청와대에서 이를 담당하는 주무 비서관이었다.
당시 사법개혁은 사상최대의 개혁이라 불렸다.
검찰 법원을 망라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권력 집단을 상대로 하는 개혁이었으니 만큼 참으로 파란과 시련이 많았다.
당시 청와대 실무팀장의 자격으로 나는 법원 및 검찰 대표들과 힘든 밀고당기기를 했었다.
사법개혁의 주 이슈는 다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법시험의 합격자 정원을 몇 명으로 할 것인가였고, 또 하나는 '로스쿨' 도입문제였다.
300명이던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불과 몇 년 안에 1000명으로 늘리자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었고, 자연히 법조계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그러나 청와대의 강력한 의지와 열화와 같은 여론의 지지,그리고 법조계 내 개혁파의 진지한 노력으로 사법개혁이 시작된 지 약 2개월 만에 사법시험 합격자 정원을 1000명으로 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문제는 로스쿨이었다.
나는 사실 사법시험 합격자 수보다도 로스쿨 도입문제가 훨씬 더 합의하기가 쉬울 것이라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변호사 숫자의 증가는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만 로스쿨은 단순한 학제에 불과했고,기껏 학제 가지고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법조계는 합격자 수보다도 로스쿨 도입에 훨씬 더 강력히 반대했다.
로스쿨을 도입한다는 명분은 너무나 분명했다.
그것은 첫째,변호사의 전문성이었다.
공대 자연대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학부에서 공부한 사람이 변호사가 되면 그 지식을 바탕으로 특정분야에서는 다른 이에 비할 수 없는 전문성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학부에서 토목을 전공한 사람이 로스쿨을 나와 건설전문 변호사가 되면 학부부터 법학만을 공부한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따라갈 수 없는 전문성을 갖게 된다.
둘째,로스쿨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 또 법에 대한 관심과 헌신이 있는 사람들이 법조인이 될 가능성을 높여준다.
대학에 갈 때는 나이도 어리고 자신에게 어떤 자질이 있는지 잘 모른다.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의 적성이 법 분야에 있다고 확신하고 그 길을 택한 사람은 그 열정과 헌신이 다른 사람과 비교가 안되게 높을 것은 불문가지다.
셋째,로스쿨은 폭넓은 소양을 쌓은 법조인을 양성할 수 있다.
학부에서 음악 문학 역사 철학 등 온갖 분야를 다양하게 전공하고 로스쿨을 거쳐 법조인이 된 사람은 그만큼 폭넓은 소양과 인생에 대한 깊이있는 인식을 갖게 된다.
우리나라 법조계에는 다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책임이 막중함에도 불구하고 평생 오로지 법만 공부한 탓에 소양이 좁고 한정된 경우가 많다는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넷째,이것이 가장 중요한 점인데 로스쿨은 학생들로 하여금 대학 공부를 충실히 하게 만든다.
이른바 '고시 낭인(浪人)'을 없애는 것이다.
학부 성적이 로스쿨 입학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니 자연이 학생들이 대학공부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너무나 명백한 논리를 수긍하면서도 법조계는 로스쿨 도입에 막무가내 반대였다.
법조계 내 개혁파의 진지한 노력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근본적 이유는 알고 보니 이것이었다.
로스쿨이 도입되면 결국 1000명이라는 사법시험 합격자수가 고착화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총무처 소관으로 상당부분 마음대로 늘리거나 줄일 수 있고, 또 다음 정권에 가면 도로 줄일 가능성도 남지만 로스쿨이 되면 이것이 아예 불가능해진다는 것이었다.
결국 8개월간의 처절하고도 진을 빼는 협상 끝에 로스쿨은 장기 과제로 넘겨지고 말았다.
10년이 지난 지금 로스쿨은 드디어 실현되고 있다.
개혁을 향한 역사의 도도한 물결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요즈음 서울대 연대 고대 등 명문대학들이 메디컬스쿨(의학전문대학원) 안을 거부했다고 해서 화제다.
로스쿨에 적용되는 장점의 대부분이 메디컬스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왜 이런 명백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거부하는 것일까? 그들이 내거는 거부의 명분은 정말 무엇일까? 참으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