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인터넷 보안사고가 터지면 누가 좋아할까. 최근 인터넷 뱅킹 사고가 터진 후 관련업계 임원은 이런 질문을 했다. 정답은'보안업계 사람들'이다. 사고가 터지면 일시적이나마 사람들이 인터넷 보안의 중요성을 깨닫고 관련 상품이나 서비스를 많이 찾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평소에는 인터넷 보안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웜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적으로 많은 서버가 다운돼 문제가 됐던 2003년 초의'인터넷 대란'때도 그랬다. 며칠동안 코스닥에서 보안업체 주가가 치솟고 일감이 쇄도하더니 몇개월 지나자 잊혀졌다. 보안업체들은 일감이 부족해 다시 사투를 벌여야 했고 많은 업체가 문을 닫았다. 이젠 기술 개발도 시들해졌다. 이미 2002년 초 '패스21 사건'이 터지면서 생체인식 보안 기술 개발 열기가 식기 시작했다. 급기야 보안업계에서는 "바이러스라도 만들어 퍼뜨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씁쓸한 우스갯소리까지 나돌았다. 인터넷 보안에 대한 의식은 부족해도 인터넷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세상이 이미 눈앞에 다가왔다. 정부는 전자정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고 집안의 각종 디지털 기기를 네트워크에 연결하는 디지털 홈도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인터넷 활용도만 놓고 보면 우리만큼 앞서가는 나라는 없다. 하지만 더 많은 정보와 기기가 연결될수록 인터넷은 더 위험해진다. 모든 배를 줄로 단단히 묶어 놓았던 조조의 선대(船隊)가 동남풍이 불 때 불화살 공격을 받아 모두 불탔던 적벽대전을 생각해 보라.그래서 안철수연구소의 전 대표인 안철수씨는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칼럼에서 바이러스를 퍼뜨려 서울시내 모든 집의 밥을 까맣게 태울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인터넷 보안업체들이 '불화살 공격'을 막을 수 있는 획기적인 보안 프로그램을 내놓기를 기다리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우리 보안업체들의 역량은 개발에 몰두하기엔 너무 미흡하다. 살아남기도 버거운 실정이다. 게다가 신발 장사가 10년,20년 닳지 않는 신발을 만들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면 결론은 명확해진다.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나서야 한다. 국책연구기관을 독려해 해킹 차단 기술을 개발하게 하든지 이런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 전자정부든 유비쿼터스 사회든 보안 시스템을 갖추지 않고서는 모래성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부는 지난해 발표한 정책 로드맵 'IT839 전략'에서 정보보호기술 및 정보침해대응기술 개발에 2006년까지 약 1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보통신망의 보안을 '8대 서비스,3대 인프라,9개 성장동력'에 별도로 포함시키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물론 보안 기술 개발이 정통부만의 일은 아니다. 인터넷 발달 속도에 비하면 '사이버 캅'에 대한 지원도 약해 보인다. 철조망보다 정보통신망이 뚫리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 지금도 정부가 '사이버 솔저'를 강화하기로 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최근 장관 이름이 새겨진 열쇠고리가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이 열쇠고리를 만든 장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 우리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열쇠고리'가 아니라 인터넷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믿음직한 '열쇠'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김광현 IT 부장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