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이는 그대로인데 돈 쓸 곳은 `태산'같고…" 최근 서민 가계의 고정비용인 각종 공공요금과 국민연금ㆍ건강보험료가 들썩이면서 서민들의 지갑이 더욱 얇아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비정규직 확대와 조기 퇴직으로 고용불안이 확산되고 있고 임금까지 동결되는 가운데 사교육비 부담과 계층 간 양극화 심화로 서민들은 그야말로 `등골이 휠 지경'이라는 비명을 내 지르고 있는 형편이다. 이렇게 서민 가계가 팍팍해지다 보니 지갑을 좀처럼 열지 않아 백화점이나 생활필수품을 파는 할인매장까지 매기가 뚝 떨어지고 있다. ◆오르는 요금ㆍ세금에 `죽을 맛'= 이달 1일 택시요금을 `신호탄'으로 공공요금 인상이 줄줄이 예정돼 있어 서민 생활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서울시는 택시요금을 평균 17.52% 올린 데 이어 8월부터 하수도 요금을 35% 올리는 하수도사용조례 개정안을 최근 확정했다. 한번 오르면 좀처럼 내리지 않는 휘발유 값은 이미 ℓ당 1천400원 이상으로 가격이 형성된 지 오래됐고 경유도 다음달부터 ℓ당 63원 정도 오를 전망이다.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담배도 하반기 중 가격이 500원 정도 오를 것으로 보이고 자동차 보험료도 보험사가 자동차 정비업체에 지급하는 정비수가 인상 등으로 하반기에 3∼5% 정도 오를 예정이다. 전기요금도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하반기에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인상 릴레이'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특히 정부와 여당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각종 공공요금과 세금 인상 작업을 올해 안에 마칠 가능성이 높다.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국민연금법 개정 작업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에 따른 연금고갈이 예상되면서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고 2007년부터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부담은 지금의 두배로 늘어난다. 3개월 이상 건강보험을 체납한 세대도 2002년 161만 세대에서 점차 증가세를 보여 지난해 191만 세대, 올해는 4월까지 197만 세대로 오름세를 타고 있을 정도로 서민 가계는 바닥을 치고 있다. 행정자치부와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지난해 징수된 국세와 지방세를 총인구로 나누면 국민 1명당 세금 316만원을 낸 셈인데 이는 사상 최고치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하면 한해 세금만 1천264만원을 냈다는 말인데 조세부담률을 적용하면 우리나라 국민은 벌이의 20% 정도를 세금으로 납부하고 있다. 연간 18조원에 달한다는 사교육비도 서민의 등골을 휘게 한다. 노동연구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초ㆍ중ㆍ고교생을 둔 근로자 가정의 30.9%가 사교육비에 `매우 부담'을 느끼고 있고 44.0%가 `조금 부담'이 된다고 답했을 정도다. ◆벌이는 `제자리 걸음'=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올해 초 사측에 권고할 임금인상률 가이드라인으로 근로자 1천명 이상 대기업은 동결, 1천명 미만 사업장은 3.9%를 제시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노동계가 요구한 임금인상률인 정규직 9.3∼9.4%, 비정규직 15.6∼19.9%과 큰 차이를 보이며 마찰을 빚고 있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5월말 현재 100인 이상 6천여개 사업장 가운데 임금교섭이 타결된 사업장은 17.7%로 지난해보다 1.2%포인트 떨어졌고 임금교섭이 타결된 사업장도 평균 임금인상률이 총액기준 4.8%로 지난해보다 0.3%포인트 하락했다.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대기업도 기업별, 부문별 성과급에 따라 다르겠지만 연봉중 기본급 성격의 임금 인상률을 3∼5% 선으로 맞춰 지난해보다 1∼2% 포인트씩 낮아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업의 영업이익 감소로 명목 국내총생산(GDP)과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이 6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국민의 실질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 국민총소득 증가율도 외환위기 이후 최저로 내려앉아 그만큼 소비 심리가 심하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남편이 중소기업에 다니고 두 자녀를 둔 주부 조은영(36)씨는 "수입은 그대로인데 아이들은 커가고 쓸 곳만 늘어나 하루하루가 전쟁"이라며 "부동산 값은 치솟기만 해 내집마련도 힘들고 부자들만 돈을 더 벌어 좌절감까지 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돈을 안쓰니 물건이 팔리나"= 백화점과 대형할인점도 여름 성수기를 앞둔 6월인 점을 감안하면 그다지 분위기가 좋은 편이 아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연초와 비교할 때 4∼5월이 되면서 매출 신장세가 저조해진 것은 사실"이라면서 "여름 특수를 앞두고 있어 매출 신장을 기대하고는 있으나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할인점인 E마트 관계자는 "생활필수품을 주로 판매하기 때문에 물가상승과 공공요금인상에 큰 영향을 안 받고 있지만 연초 기대했던 만큼 분위기가 좋지는 않다"고 말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도 "지난 1월에만 해도 소비심리가 살아날 것으로 봤지만 현재로선 그럭저럭 매출을 유지하는 수준"이라며 "공공요금 인상으로 1∼2개월 뒤에는 소비심리가 더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연초에는 매출이 약간의 신장세를 보여 왔지만 최근에는 어렵게 유지하고 있다"며 "유통업계는 특히 하반기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오히려 더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당초 예상됐던 100년만의 무더위가 없을 것이란 최근 예보는 에어컨 예약주문율 을 크게 떨어뜨리면서 여름 특수에 한껏 부풀었던 유통업계에 또다른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hskang@yonhapnews.net